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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18의 게시물 표시

자유로운 이들

법은 우리의 행동 범위를 제한하는 역할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행동이 늘 올바르지 않고 그릇된 의도를 품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행동을 제한할 필요가 없습니다. 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언가를 억압하고 강박하기 위해서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그래서 성령은 우리가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마음껏 사랑하게 합니다. 그래서 성령에 따라 사는 사람에게는 제약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제한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령에 따라 사는 사람이 이 세상에 머무르는 동안 그는 '겸손'할 줄 알고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자유롭다고 해도 여전히 법에 매여 사는 사람들에게 스캔들을 일으켜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로 그 점 때문에 성령에 따라 사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자유를 절제합니다. 그러나 그 본질적 자유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 자유롭게 사는 이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죄 안에 머물러 있다면 법을 두려워할 줄 알고 법을 올바로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성령 안에 머물러 있다면 자유를 만끽할 줄 알고 그 자유를 올바로 실행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영적 진보의 도식

선한 사람이 늘 당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럴 수 밖에 없지요. 선하니까 그 선한 성정을 이용하려는 사람이 늘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선하다는 것의 본질적인 의미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느님을 향해서 나아간다'는 것이지 무턱대고 모든 것을 무분별하게 수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선한 사람은 바르고 그른 것을 가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런 선한 사람은 기본 성정이 선하긴 하지만 모든 것을 수용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가능한 모든 것을 수용하지만 아닌 것에는 과감하게 아니라고도 표현하게 됩니다.

그러나 선한 사람은 하느님을 따라가면서 '십자가'라는 것을 배우게 되고 그래서 그의 내적 영역이 확장되고 넓어지면서 사랑이 더욱 커지게 됩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악한 이도 받아들이는 여유를 지니게 됩니다. 그의 악한 성정과 악한 의도를 알면서도 그 악을 자신 안에서 녹이기 위해서 그 악을 수용하는 것이지요. 헌데 이 모습이 외부 사람들이 보면 정말 멍청해 보이고 어리석어 보이는 모습이 됩니다.

도식화 해서 보여드리겠습니다.

악을 저지르고 뉘우치지도 않는 사람
악을 저지르지만 뉘우치는 사람
악을 알아보고 저지르지 않지만 구체적인 선을 행하지도 않는 사람
선을 실천하려고 노력하지만 약하고 실수를 하는 사람
선을 실천하면서 약함을 극복하고 악을 분별하는 사람
선을 실천하면서 더 많은 선의 일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사람
선을 실천하면서 타인의 악을 분별하고 그 악을 자신 안에서 녹여내는 사람

물론 여러분의 이해를 위한 것이지 이것이 '공식'은 절대로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도식화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위치를 알아볼 수 있게 됩니다. 물론 한 사람이 한 군데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오늘은 약하다가 내일은 선에 적극적일수 있고 또 다른 날은 유혹에 빠져 악을 저지르고나서 뉘우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추구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지금의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