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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 역사

사상의 역사를 대충 살펴보면 인간은 먼저 별다른 무리 없이 조화롭게 살아왔습니다. 오랜 기간을 인간으로서 '자연스럽게' 살아왔습니다. 물론 서로 필요한 소통을 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구전되는 이야기들이 있었겠지요. 그건 지혜에서 지혜에로 전해져 내려왔고 당연히 나이가 많고 속 깊고 경험이 많은 어른들이 그런 지혜를 젊은이들에게 전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사상'이라는 것이 정리되기 시작합니다. 서로의 주장을 올바로 검증하는 문화가 생기고 보다 논리적이고 체계적이라고 생각되는 주장들이 힘을 얻게 되지요. 그리고 그렇게 모여진 생각은 자연스럽게 정리되어 갔습니다. 당연히 보다 '이성적'인 것이 주목받고 각광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논리와 이성이라는 체계 안에서 생각들을 정돈해 갔지요. 그러다가 '기독교'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과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전까지 지배적으로 작용해오던 이성을 바탕으로 하던 체계 안에서 소위 믿음의 학문, 곧 신학이 정립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아무리 올바른 사상과 생각이 있다고 해도 '죄'라는 것이 그것을 파괴하고 엉뚱한 결과물을 내어놓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의 오류에 물든 주류를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하나의 중심에서 벗어나 개개인의 고유성을 중요시하는 쪽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또한 이성을 통해서 실천적인 '과학'도 발달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지성이 이루어내는 결과물에 인간 스스로 감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중세를 벗어나 근세로 가는 움직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종교 안에서는 '종교개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치명적인 오류가 존재했습니다. 주류의 문화 안에서 일어나는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 각자가 주체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각자가 모두 '올바름'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고 근본적으

조급한 마음

"이러이러한 현상은 큰일이다 바꾸고 개선 시켜야 한다!" 헌데 하느님은 무반응인 것 처럼 느껴집니다. 뭔가 내가 생각하기에는 당장 바뀌어야 할 요소가 있는데 하느님은 느긋하게 관망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답답해집니다. 굉장히 초기부터 존재해 온 갈등입니다. 물론 결과가 예정되어 있는 갈등이지요. 하느님이 승리하시고 조급해하는 이들이 지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원과 찰나는 싸움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쩌자는 걸까요?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면 되는 걸까요? 하느님이 다 알아서 하시게 두면 되는 걸까요? 이러한 생각 역시 또다른 극단을 달리는 생각입니다. 모두이거나 아무것도 아니거나. 전형적인 흑백논리이지요.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하느님께서 전능하시고 전지하시며 모든 진리의 근원이시고 사랑 그 자체라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런 하느님을 신뢰하면서 살아가는 이들이 존재합니다.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은 자신의 현실을 도외시하지 않으며 또한 제자리에 멈춰 있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꾸준히 해야 할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개선시켜 나갑니다. 반대로 '자신의 생각'이 우선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자신의 생각들은 저마다 천차만별이라서 누구는 하느님에게 불만을 갖고, 누구는 이웃에게 불만을 갖고, 누구는 사회구조에 불만을 갖고, 누구는 경제에 불만을 갖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항상 불안해하고 조급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언가가 합리적이지 않고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을 감지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고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해소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올바른 방향을 잡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준비되지 않은 아이가 수술실에서 수술을 집도하는 것과 같은 일이 야기됩니다. 수술을 올바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정규교육을 올바로 받고 수많은 임상과정을 거친 뒤에 비로소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있는

주님의 길

창조주가 없다고 믿는다면 그런 세상을 살아가면 됩니다. 그들은 나름의 질서를 구축하고 살아가겠지요. 좀 더 나은 삶에 대한 저마다의 의견을 서로 충돌시켜가면서 살게 될 것이고 거의 대부분은 '힘의 다툼'으로 끝나게 될 것입니다. 더 강력한 이가 권력을 쥐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세상의 질서를 힘없는 이들이 따르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구요. 반면 창조주의 존재를 수용하는 이라면, 그리고 그 창조주가 가장 전능하고 선하신 분이라는 것을 기본적으로 신뢰하는 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입니다. 그가 만든 세상 안에서 살아가고 우리 역시도 '창조된' 이라면 그분의 뜻을 이해하고 수용하고 실천하려는 노력이 당연히 뒤따라야 마땅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사람들이 온통 뒤섞여 살기 때문에 하느님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차를 지니는 이들이 저마다의 목소리를 들어높이며 서로 의견다툼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은 그런 '분쟁'이나 '논쟁'에 휘말려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시간낭비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분명히 현존하는 세상 안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걸음이 필요합니다. 그분의 질서를 하나라도 더 알고 하루를 살면서 하나라도 더 실천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나는 잘 모르겠으니 도와 달라고 하는 이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유익한 일입니다.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누군가가 채워 주기를 기다리기에 우리가 줄 수 있는 참된 믿음과 희망을 전해주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확고히 믿는 '신념'을 바탕으로 우리를 공격해 들어오는 이들과는 공연한 시간낭비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길을 가고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면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이들이지 '모든 것을' 감싸안고 바로잡을 수 있는 능력 같은 것은 없습니다. 때로는 '착함병'에 걸린 이들이 스스로의 도덕적 우월감을 바탕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