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언제나 더 나은 환경을 꿈꾸면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더 나은 환경이라는 것은 아픔이 없고 고통이 없고 행복이 더한 환경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을 찾고 갈구하며 그것을 얻기 위해서 애를 쓰고 살아갑니다.
여기에 전혀 엉뚱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바오로 사도입니다. 그는 자신이 가는 여정에 투옥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합니다. 심지어는 그것이 목숨의 위협으로 다가올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추구하는 것은 육신의 안녕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뚜렷한 목적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은총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바오로 사도는 당당하게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그 누구의 멸망에 대해서도 나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것을,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엄숙히 선언합니다. 내가 하느님의 모든 뜻을 무엇 하나 빼놓지 않고 여러분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 자격조차 없었고 저 역시 바오로 사도의 신발 끈을 풀 자격조차 없지만 저 역시 같은 고백을 위해서 달려가고 있습니다. 적어도 제 삶의 모습에서 바오로 사도의 향기가 나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저는 선교사로서 가장 먼 곳도 달려갔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복음이 전해지기를 진정으로 바라는 곳이라면 달려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세상 어디에도 딱히 속하지 않은 것에 참으로 만족을 느낍니다. 오늘 복음처럼 저는 예수님의 소유가 된 사람입니다. 다만 예수님은 더 이상 세상에 머무르시지는 않은데 아직 저는 이 세상에 머물러 하느님께서 저에게 하라고 맡기신 남아있는 과업을 다해야 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이 본당 떠나시면 더 좋은 본당 가셔야지요'라고 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좋은 본당이라는 표현이 세속적으로 좋은 본당이라면, 즉 쉽고 편하고 안락한 본당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입니다. 앞으로 가는 본당은 더 많은 사람이 있을 것이고 더 복잡하고 골치아픈 사건이 저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좋은 본당이란 없습니다. 우리가 힘을 모아 신앙 안에서 하나가 될 때에 좋은 본당이 되는 것입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마지막으로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면서 우리 자신의 여정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묵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내가 아시아에 발을 들여놓은 첫날부터 여러분과 함께 그 모든 시간을 어떻게 지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유다인들의 음모로 여러 시련을 겪고 눈물을 흘리며 아주 겸손히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유익한 것이면 무엇 하나 빼놓지 않고 회중 앞에서 또 개인 집에서 여러분에게 알려 주고 가르쳤습니다. 나는 유다인들과 그리스인들에게, 회개하여 하느님께 돌아오고 우리 주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저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아직 투옥과 환난을 겪지는 않았지만 이 여정이 계속되어 가면서 세속적인 기쁨과 행복에서는 점점 더 멀어지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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