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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2026년 7월 12일 주일 [(녹) 연중 제15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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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말은 완수될 것이다 2026년 7월 12일 주일 [(녹) 연중 제15주일]

한 사람의 말은 그 당사자의 의지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말이 구체적으로 실행되는지 아닌지는 얼마나 멋들어지고 정교한 말로 표현했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그 일을 실행할 능력에 달린 문제입니다. 초등학생이 '나는 사람들을 살리는 의사가 될 거에요.'라고 하는 것과 실제 의과대학 졸업을 앞둔 의대생이 '나는 사람들을 살리는 의사가 될 거에요.'라고 말하는 것은 무게감이 전혀 다릅니다. 세상에서 가장 의지가 강한 분은 누구일까요? 그것은 다름아닌 하느님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아무리 원하는 것이 있어도 때로는 장애물에 가로막히곤 하지만 하느님에게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분은 '전능하시고 불가능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표현을 들으면 때로 반감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맞닥뜨리는 세상은 불합리해 보이고 불완전해 보이고 심지어는 악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니까요. 악한 이들이 선한 이들을 괴롭히고 심지어는 그들의 생명까지도 빼앗아 가는데 의인들은 고통당하기만 하고 아무리 하느님께 부르짖어도 하느님은 들은 척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다릅니다. 우리의 한계는 우리가 오직 눈에 보이는 영역에서만 답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의 일생이라는 시간적 한계 속에서만 결과를 볼 수 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짧은 시간 안에 결론을 내릴 이유도 없고 조급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분은 영원을 쥐고 계시기 때문에 영원 안에서 당신의 섭리대로 일을 마무리하시면 됩니다. 계란 후라이를 하기 위해서 계란을 깨는 순간에 누군가 와서 '아! 아직도 계란 후라이가 안되었어?!'라고 한다면 정말 이상한 모습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후라이팬이 달궈져야 하고 기름을 둘러야 하고 그리고 익히는 데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이게 갓 시작한 요리를 두고 왜 완성이 되지 않았느냐고 따져봐야 의미 없는 일입니다. 하느님도 그렇게 일하십니다. 하느님은...

마땅한 사람을 찾는 법 2026년 7월 9일 목요일 [(녹)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1독서에는 하느님의 애타는 마음이 드러납니다. 특히나 다음의 구절이 절절합니다. "나는 인정의 끈으로, 사랑의 줄로 그들을 끌어당겼으며 젖먹이처럼 들어 올려 볼을 비비고 몸을 굽혀 먹여 주었다." (호세 11,4) 우리는 하느님을 막연히 먼 분으로, 우리를 초월해 계신 분으로 간주하지만 사실 하느님은 우리 가장 가까이 있고 그 누구보다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당신의 가장 충실한 외아들을 보내시어 우리에게 구원을 선포하시고 당신의 복음을 전할 사도들을 보내십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파견에 앞서 지침을 받습니다. 그들은 고을로 가야 하고 마땅한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다윗을 찾아가실 때에 사람을 찾는 법이 잠깐 등장합니다.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 나는 이미 그를 배척하였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1사무 16,7)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사도들 역시도 사람들의 마음을 봅니다. 그리고 사실 마음으로 찾은 그 마땅한 사람을 통해서 일이 진행이 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사실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언뜻 세상을 돌아보면 많은 돈이 일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 안에 숨어 있는 사람의 마음이 일을 합니다. 목마른 마음이 영혼의 샘에서 물을 마시고 감사하는 마음이 기쁨을 표현합니다. 마음이 없으면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찾아오지 않고 마음이 있으면 아무리 멀리 있어도 반드시 찾아갑니다. 의지가 있고 뜻이 있는 사람은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서라도 위대한 일을 해내고, 의지가 없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환경에 놓여 있어도 모든 것을 허비해 버리고 맙니다. 복음은 바로 그것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파견된 사람을 자신의 가까이 두는 것은 '마음'이 열린 사람에게는 축복이 됩니다. 그래서 그는 그 집에 들어가면서 돈을 주거나 권위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빌어 줍니다. 그리고 그 평화는 수용자에 따라서...

우리가 가야할 길

다른 민족들의 길 세속성을 상징합니다. 세속에 속한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을 열렬히 추구하는 상태, 즉 돈과 권력과 명예를 최종 목적지로 두고 추구하는 상태입니다. 그럼 우리 신앙인과는 상관이 없겠구나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신앙인도 그 내면 가장 깊은 곳에 근본 선택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겉으로는 신앙인의 행동을 따라하는 것 같지만 근본에는 세속에 대한 추구를 언제나 하느님 앞에 두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이들은 흔히 신앙을 자신의 삶을 꾸며주는 하나의 생활로 치부하고 생의 위기가 다가오면 언제든지 멀리하고 버릴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지금의 자녀 세대들에게서 쉽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소위 '먹고 산다는 핑계'를 앞세워 신앙을 소홀히 하는 이들과 그것을 두둔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마리아인들의 고을 원래는 한 형제였는데 건전한 신앙에서 갈라져 나간 이들을 의미합니다. 최근 들어서는 SSPX라는 성 비오 10세회라는 전통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주교를 임명하면서 최종적으로 가톨릭과 결별을 완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하나의 단편일 뿐 수많은 일들이 교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계 치유라던지, 하느님의 뜻 영성이라던지 교회 안에서는 건전한 신앙을 왜곡하는 수많은 경향들이 존재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하느님을 추구하는 것 같지만 인간 내면의 교묘한 영적 자만이나 교만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흘러 스스로에게 우월감을 느끼게 하거나 반대로 한 사람을 지나치게 죄스럽게 느끼게 하여 영적 구속 상태에 빠지게 하는 등입니다. 특정 신심에 지나치게 빠지거나 이교적인 가르침을 분별없이 받아들이면 흔히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 이들은 가장 깊은 내면에 영원에 대한 희망을 품고 살고 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 이유는 좋은 인도자가 없어서 그런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이런 이들은 교회 안에 존재할 수도 있고 교회 밖에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본당에서 신부님이 강론 중에 내내 정치 이야기만...

황사영 백서 (한글)

황사영 백서 죄인 토마스 등은 눈물을 흘리며 본주교 대야 각하께 호소합니다. 지난 봄에 길 떠났던 사람 편에 각하께서 건강하게 잘 계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마는, 세월이 지나 벌써 해가 다 저물어 가는데, 그 동안은 또 어떻게 지내시는지 알지 못합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각하께서는 주님의 넓으신 은총으로 영육간에 건강하시고 주님의 도우심으로 덕화가 나날이 융성하시기에 우러러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하며, 기뻐하여 하례 드리는 마음 이기지 못할 듯 합니다. 저희 죄인들은 죄와 악이 깊고 무거워 위로는 주님의 노여움을 샀으며, 재주와 지혜가 얕고 짧아서 아래로는 다른 사람의 헤아림을 잃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박해가 크게 일어나 그 화가 신부에게 미치게 하였습니다. 저희 죄인들은 또한 위태로움에 임하여 목숨을 버려 스승과 함께 주님의 은혜에 보답하지 못하였으니, 다시 무슨 면목으로 붓을 들어 우러러 호소하겠습니까? 다만 엎드려 생각건대 성교가 뒤집혀 엎어질 위험이 있고, 백성이 박해에 걸려 죽을 고통 속에 있는데도 자애로운 아버지를 잃어 붙들고 호소할 데도 없으며, 어진 형제는 사방으로 흩어져서 모든 것을 헤아려 주관할 사람이 없습니다. 각하께서는 은혜로운 부모를 겸하셨고, 의리로는 사목의 무거운 책임을 지셨으니, 반드시 저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해 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지극한 괴로움에 저희는 장차 누구를 불러야하겠습니까. 이에 감히 박해의 전말을 대략 아뢰고자 합니다. 일이 시작된지 이미 오래고 실마리가 하도 많아서 간단히 말씀드리기가 어려으므로 다음에 자세히 적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불쌍히 여기시고 굽어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교회가 무너져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는데, 오직 죄인만이 요행히 화를 면했고, 요한도 들키지는 아니하였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은총이 아직 우리나라에서 아주 끊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 죽은 사람은 이미 목숨을 버려 성교를 증명하였거니와, 살아 있는 사람은 마땅히 죽음으로써 진리를 지켜야 할 것입니다. ...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2026년 6월 21일 주일 [(녹) 연중 제12주일]

우리가 어린 시절 마음이 안정되어 있었던 이유는 누군가의 시선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먹고 싶을 때 먹고 싸고 싶을 때 싸면 그만이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에게 이 시기는 거의 기억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지혜가 부족했고 그냥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첫번째 시기가 다가옵니다. 그것은 바로 부모와의 유대관계 속에서 벌어집니다. 우리는 부모라는 인격과 관계를 맺으면서 그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를 배웁니다. 그 시기에 많은 아이들이 부모의 가치관을 물려 받습니다. 외적이고 화려한 것에 관심이 많은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그 가치관을 물려받아 외적인 것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됩니다. 또 돈을 사랑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마찬가지로 돈에 대한 욕구에 눈을 뜨기도 합니다. 반면 진솔하고 참된 것을 올바른 가치로 삼고 살아가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그것이 좋은 것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추구합니다. 그러다가 학교를 가게 되고 친구를 만납니다. 그리고 이내 친구와의 유대관계에 빠져듭니다. 친구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가 중요한 가치가 됩니다. 그래서 때로는 친구들의 비행에 동참하기도 하고 또 좋은 친구들을 만나 좋은 뜻을 품기도 합니다. 우리 속담에도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친구의 시선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어떤 옷을 입고 다니는지, 어떤 유행을 따르는지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제 이 아이는 성장해서 사회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주변 동료들이 생겨납니다. 직장에 따라서, 내가 몸담는 문화에 따라서 그들의 시선에 영향을 받게 됩니다. 때로는 내가 어떤 정치색을 가졌는지가 주변 환경에 따라 중요하게 되고 또 어떤 신념을 가졌는지도 신경쓰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꽤나 오랫동안 지속됩니다. 신앙인은 이 가운데에서 '하느님'을 만납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날 수도 있고 어느정도 커서 철이 든 뒤부터...

하늘에 보물을 쌓는 법 2026년 6월 19일 금요일 [(녹)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최근 읽고 있는 책에서 발췌 이 글을 쓰면서 무의미하고 경멸적인 삶을 산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의롭게 생활한 이들을 찬미하고 이 이야기를 듣게 될 사람들의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에 외모는 수수하지만 거만한 태도를 지닌 동정녀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엄청난 부자였지만 이방인이나 동정녀, 교회, 가난한 이들에게 돈 한 푼 주지 않았습니다. 사부들로부터 여러 차례 질타를 받았으나 그녀는 물질적인 부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중략) 복된 마카리우스가 이 동정녀의 탐욕을 줄여 보려 했다고 합니다. 장애인들을 위한 가난한 이들의 집 원장이며 사제인 마카리우스는 다음과 같은 계책을 생각해 내었습니다. 젊었을 때 보석 세공사로 일했던 그는 그녀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나는 취옥과 풍신자석을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그 보석들을 우연히 발견한 것인지 도둑질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무척 귀한 것이므로 값을 매길 수 없지만, 오백 금화만 있으면 가질 수 있습니다. 당신이 그것들을 산다면, 그 가운데 하나만 팔아도 오백 금화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니, 나머지는 당신 조카를 예쁘게 치장하는 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 동정녀는 그 말에 넘어가서 “제발 그 보석들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마세요.”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자 마카리우스는 그녀에게 “우리 집에 와서 그것들을 구경하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동정녀는 곧장 오백 금화를 내놓으면서 “이 돈을 받으세요. 나는 당신이 그 보석들을 팔려고 내놓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마카리우스는 오백 금화를 받아 병원에 기부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마카리우스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높이 존경을 받고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며 관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백 살까지 살았고, 우리도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 동정녀는 그에게 그 일에 대해 말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했습니다. 마침내 그녀가 교회에서 그를 만나자 물었습니다. “제가 오백 금화를 지불한 그 보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