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보면 하느님은 꾸준하십니다. 당신의 뜻은 복잡하지 않고 굉장히 뚜렷하고 또 항구합니다. 그건 사람들을 데려오는 것입니다. 에제키엘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너희를 민족들에게서 데려오고 모든 나라에서 모아다가, 너희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겠다.” 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천주교를 흔히 ‘얌전한 종교’라고 간주합니다. 하지만 사실 천주교가 얌전한 종교처럼 보이는 시절은 현대에 들어와서 불과 얼마 되지 않습니다. 거의 모든 시기에 천주교는 성가시고 유별난 종교, 즉 선교하는 공동체였고 사람들을 모으는 종교였습니다. 사도행전만 봐도 그렇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는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 밖에도 많은 증거를 들어 간곡히 이야기하며, “여러분은 이 타락한 세대로부터 자신을 구원하십시오.” 하고 타일렀다. 베드로의 말을 받아들인 이들은 세례를 받았다. 그리하여 그날에 신자가 삼천 명가량 늘었다. 가톨릭 교회가 얌전하다는 것은 사실 우리에게 부과되는 선교라는 뚜렷한 사명에서 도망가고 싶은 비겁한 변명에 불과합니다. 사실 우리 성당 자체가 선교의 증거입니다. 우리가 성당 옆에 세워놓은 김보록 신부님은 프랑스 사람이고 그 머나먼 나라에서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하러 온 분이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처럼 프랑스 교회가 고상한 척을 하고 얌전만 떨었다면, 흔히 하는 말처럼 지금의 우리 성당 자체가, 아니 우리 한국 가톨릭 교회 자체가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만의 신앙에 함몰되어 있는 신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저 내가 누리는 신앙의 편안함이 변화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뿐입니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떠나 어디까지 도망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오늘 미사를 마치면서도 우리는 또 한 번 들을 것입니다.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그리고 우리는 대답하겠지요.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