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에게 일어난 일을 구조화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불합리한 상황
- 거룩한 지시
- 믿음의 수락
먼저는 불합리한 상황이 생겨납니다. 이는 우리의 일상에서 자주 마주하게 되는 상황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모든 것이 잘 풀리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불합리한 일들도 있고 말도 안되는 일들도 있습니다. 우리의 정상적인 범주를 넘어서는 어떤 사건이나 사람이 존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에 우리는 '신앙'을 추구합니다. 왜냐하면 내 능력의 범주 안에서 할 일이면 이미 했기 때문입니다. 요셉 역시도 자신의 능력 안에서는 '파혼'이라는 정상적인 결정을 내렸습니다. 다만 요셉의 좋은 성정대로 그 파혼을 '남 모르게' 준비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사실 요셉이 다루어야 하는 일은 정상적인 범주의 일을 벗어난 하나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그 내면에 믿음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거룩한 지시가 등장합니다. 요셉에게는 그것이 꿈이라는 수단으로 주어졌지만 꿈이라는 수단은 아무에게나 허락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상적인 범주에서는 교회나 영적 지도자가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가 가르치는 바를 믿어야 하고 영적으로 성숙한 이의 거룩한 명령을 따를 줄 알아야 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은 이 거룩한 지시를 무시합니다. 그건 오늘날 교회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 거룩한 것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심지어 코미디언에게 상담을 하면서도 자신의 인생의 근원적인 행방의 문제를 교회에서 찾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요셉은 마침내 믿음으로 수락합니다. 복음은 이를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고 표현합니다. 순종, 순명은 대표적인 믿음의 수락 행위입니다. 그래서 사제들은 '순명' 서약을 하고 수도자들도 장상에게 순명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현대인들에게는 적극적으로 거부되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요즘은 모두 스스로 잘난 사람들이 많아서 '순명'할 이유를 느끼지 못합니다. 순명이라는 거룩한 덕행 속에 얼마나 아름다운 가치가 숨어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맹목적인 복종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신앙 안에서 정당하게 이루어지는 거룩한 순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만일 사제가 새벽 2시까지 화투를 치자고 한다면 그것은 거부해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건 사제의 취향을 따르느냐 마느냐의 문제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임 사제가 본당의 직무 안에서 무언가를 요구하면 거기에는 '순명'이 깃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제직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느님을 거부하는 일이 됩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의 결과를 압니다. 요셉은 구원자의 양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류에게 가장 고귀한 역사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삶은 성가정을 돌보기 위한 고생스러움으로 가득했겠지만 그의 마음은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는 메시아의 탄생을 바라보며 기쁨에 가득했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는 제 주보 성인을 사랑하고 저 역시도 그렇게 살아가고자 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