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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26의 게시물 표시

아버지를 보다

우리는 하느님을 두 눈으로 보고 싶어합니다. 마치 하늘에서 쨍 하니 빛이 나고 하느님이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식으로 등장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보고 믿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단순히 시각에 그치지 않습니다. 실례로 우리는 한 사람의 내면에 얼마나 겸손함이 있고 감사함이 자리잡고 있는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에게 무언가를 선물했을 때에 그가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보면 됩니다. 아주 작은 정성에도 감동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언가 비싼 것을 주어야만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의 내면을 '본' 셈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서로를 이렇게 보기를 바라십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일시적인 것에 현혹되지 말고 한 사람의 진실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필립보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흔히 사기꾼들은 자신에게 없는 능력을 감추기 위해서 겉을 꾸미고 다닙니다. 다단계를 하는 사람들은 결코 후줄근하게 다니지 않습니다. 마치 자신이 성공한 사업가인양 외견을 꾸미고 다닙니다. 그래야 사람들을 현혹시킬 수 있고 그들에게 원치 않는 물건을 팔아치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진솔한 사람은 외견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그는 한 사람의 진실성을 봅니다. 그가 얼마나 성실하고 참된 사람인지, 얼마나 신심이 깊은 사람인지를 봅니다. 이는 단순히 외견을 보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를 보기 위해서는 그와 함께 지내야 합니다. 여러분은 저를 보게 될 것이고 저는 여러분을 보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이미 보이는 것도 있습니다. 아이들을 보면 그 부모님들의 교육이 보입니다. 작은 것을 선물해 주었을 때에 아이들...

성장하는 교회 / 쪼그라드는 교회

사도행전은 성장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원래는 한 사람이 하던 일을 이제는 쪼개기 시작합니다. 과거에는 사도들이 말씀도 전하고 식탁의 봉사도 함께 했습니다. 하지만 신도들이 늘어나고 일이 많아짐에 따라서 사도들은 자신들의 고유 능력에 속한 말씀 선포에 더 열중하고 반대로 식탁의 봉사라는 직분은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교회는 확연히 줄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전에 나뉘어졌던 것들이 합쳐져야 할 시기입니다. 이런 저런 직분들 가운데 사실상 거의 쓸모가 없는 직분들이 거두어들여져야 합니다. 심지어는 사제의 삶도 전에는 챙겨받던 것들을 이제는 스스로 해야 합니다. 식관을 구하는 것은 사치가 되었고 알아서 살림을 챙겨야 합니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다고 해서 핵심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사제는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풍요의 시기를 거쳐오면서 엉뚱한 일들에 많이 매진했습니다. 정작 말씀은 소홀히 한 채로 외적인 요소들을 성장시키는 데에 많은 열정을 쏟아 왔고 이런 모습은 아직도 관찰되기도 합니다. 이제는 마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무엇이 본질인지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오늘 2독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말합니다.  "여러분도 살아 있는 돌로서 영적 집을 짓는 데에 쓰이도록 하십시오." 과연 우리의 영적 집은 어떤 것이어야 마땅하겠습니까? 우리가 훗날 하느님 앞에 섰을 때에 우리는 무엇을 하느님께 보여드릴 수 있을까요? 현대의 세상은 사실 신앙의 본질을 부끄러워합니다. 때로 성당에 사진을 찍으로 오는 분들에게 '성당에 사진만 찍으러 오시지 마시고 성당을 한 번 나와 보시죠.'라고 하면 저를 이상한 잡상인 쳐다보듯이 보는 시선을 느낍니다. 과거에 교회가 성장세일 때에는 교회에 나오라고 초대하는 것이 자랑스러운 일이었고 그 사람에게 영광스러운 것을 주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지금 이 쪼그라드는 시대에 교회로 초대하는 것은 힘든 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우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