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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보다




우리는 하느님을 두 눈으로 보고 싶어합니다. 마치 하늘에서 쨍 하니 빛이 나고 하느님이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식으로 등장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보고 믿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단순히 시각에 그치지 않습니다. 실례로 우리는 한 사람의 내면에 얼마나 겸손함이 있고 감사함이 자리잡고 있는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에게 무언가를 선물했을 때에 그가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보면 됩니다. 아주 작은 정성에도 감동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언가 비싼 것을 주어야만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의 내면을 '본' 셈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서로를 이렇게 보기를 바라십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일시적인 것에 현혹되지 말고 한 사람의 진실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필립보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흔히 사기꾼들은 자신에게 없는 능력을 감추기 위해서 겉을 꾸미고 다닙니다. 다단계를 하는 사람들은 결코 후줄근하게 다니지 않습니다. 마치 자신이 성공한 사업가인양 외견을 꾸미고 다닙니다. 그래야 사람들을 현혹시킬 수 있고 그들에게 원치 않는 물건을 팔아치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진솔한 사람은 외견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그는 한 사람의 진실성을 봅니다. 그가 얼마나 성실하고 참된 사람인지, 얼마나 신심이 깊은 사람인지를 봅니다. 이는 단순히 외견을 보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를 보기 위해서는 그와 함께 지내야 합니다.


여러분은 저를 보게 될 것이고 저는 여러분을 보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이미 보이는 것도 있습니다. 아이들을 보면 그 부모님들의 교육이 보입니다. 작은 것을 선물해 주었을 때에 아이들의 반응을 보면 이 아이들이 어떤 가르침을 받고 있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고 어른들의 내면에 어떤 욕구가 지배적인지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여러분도 저를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어떤 사제인지, 어떤 것을 소중히 여기는지, 어떤 것을 하찮게 여기는지 여러분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과연 예수님은 누구이시며 우리에게 어떤 것을 보여주고 계시는지를 보아야 하고 우리는 그분의 제자들로서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믿는 사람은 예수님이 하는 일을 하게 되고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됩니다.


다만 이 '크다'는 관점을 일의 규모로만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하느님 앞에는 가장 겸허하고 낮은 이가 가장 큰 이가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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