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시험은 준비기간 동안 잔뜩 준비하고 막상 시험 당일에 시험을 봅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특히나 평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우리의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도 그 평가를 세상의 시험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최후의 심판의 장면은 그 안에 숨어 있는 내용이 전혀 다른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시험은 마지막에 선한일의 숫자와 악한일의 숫자를 더하고 빼서 최종적으로 결정되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최후의 심판의 기준은 이미 답이 나와 있는 셈이고 우리는 그 심판을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는 개념입니다. 즉 시험 당일에 컨디션이 좋아서 찍기를 잘 해서 성적을 급격히 올릴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매 순간 살아가면서 구체적이고 실천적으로 해 오는 일이 우리의 심판을 결정하고 있는 셈입니다. 복음에 나오는 심판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 자, 이제 이미 출제된 이 문제를 검토해 봅시다. 작은 이들은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단순히 돈의 양을 따지고 들거나 생활 수준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작은 이를 말하는 것이고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소외된 이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늘 작은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작음의 기준은 여러 면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누군가는 당신의 돈을 필요로 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당신의 시간을, 당신의 노력을, 당신의 신앙 선포를 필요로 할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내 친구 가운데에서 여러모로 풍족하나 아직 신앙이 없는 친구가 있습니다. 참으로 마음이 좋은 친구인데 아직 그 누구도 그에게 성당을 가보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신앙이라는 보화를 선물해 주어야 하는 것은 바로 나인데 우리는 그를 굶주리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급한 양심의 불을 끄기 위해서 가난한 이에게 돈 몇 푼을 쥐어 주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을 바라보아야 하고 그들에게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