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복음을 읽으면 예수님은 '모든 이들'을 고쳐 주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믿는 이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믿는 이들의 범위는 당신이 사는 영역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믿음은 영역에 고착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이들은 얼마든지 외부에서도 생겨날 수 있습니다. 예언자는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합니다. 영역을 중시하는 이들에게 예언자는 꼴사나운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예언자는 믿음의 사람이기 때문에 영역을 넘나듭니다. 그런 가운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시선에 예언자는 자신들에게 마땅히 베풀어야 할 것을 베풀지 않는 사람으로 비춰집니다. 나아가 예언자는 하느님을 따르는 사람이지 동네의 유지를 따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다보니 그들이 보여주는 여러가지 모습들 중에 하느님에게서 어긋나는 모습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그들이 죽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반대로 예언자가 자신들을 죽이러 온 사람처럼 느낍니다. 자신들이 지금까지 편안하고 안락하게 해 오던 일들을 예언자가 막아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언자를 죽였고 죽이려 들고 죽일 것입니다. 하지만 예언자는 하느님의 비호를 받는 사람입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허락한 순간까지, 그 사명을 다하는 그날까지 자신이 가는 길을 가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벼랑 직전까지 몰렸지만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납니다. 저 역시 유사한 경험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밀어붙였고 저를 벼랑 끝까지 몰고 갔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 사이를 가로질러 사목을 계속했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언제까지 허락하실지는 모르지만 그 순간까지 묵묵히 제 길을 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믿는 이들이 구원을 받습니다. 엘리야는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 파견되었고, 엘리사는 시리아 사람 나아만에게 파견되었습니다. 믿는 이들에게서 구원의 표지가 드러납니다. 하지만 정작 그 말을 듣고 있던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화가 잔뜩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