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침에는 여러가지 등급이 있습니다. 유치원에서 배우는 것이 있고 대학원에서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서로 급이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영혼의 가르침에도 급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속성에 찌든 이들에게 영적인 가르침을 아무리 전해 준다고 한들 졸음이 쏟아지기만 할 뿐 들을 리가 없습니다. 유치원생에게 복잡한 방정식을 가르쳐봐야 의미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혼인에 대한 가르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으니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이혼할 수 있을까?'를 찾아다녔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완고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즉 땅으로 치자면 돌이 많고 단단하게 굳어 있으며 비료도 뿌려져 있지 않은 땅에다가 소금기가 많아 그 어떤 작물도 자랄 수 없는 땅인 셈입니다. 그러니 그런 땅에는 섬세한 영성의 씨앗을 뿌려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니 과거에는 이혼을 하더라도 최소한 이혼장이라도 써주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오늘날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신앙이 무딘 이들에게는 '규정'이 중요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신앙생활을 덜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때문에 '최소한 이 정도라도 하라'는 규정이 중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의 본질은 여기에 있지 않습니다.
좋은 가르침으로 잘 다져진 마음밭에는 좋은 씨앗이 심겨질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들을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들의 마음은 순수하고 맑아서 하느님의 가르침이 잘 수용됩니다. 세속성에 찌든 이들은 그들 안에 쌓여 있는 온갖 쓰레기와 먼지를 치우고서야 비로소 가르침이 자리잡을 수 있지만 어린이와 같이 순수한 사람들은 하느님의 가르침을 메마른 스펀지가 물을 받아들이듯이 수용합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들을 안아 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순수한 영혼을 가진 이들은 하느님의 품에 안겨 살아가고 그분의 축복을 항상 받고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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