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붙들어 일으킵니다. 하지만 힘없이 늘어진 손은 다시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그는 다시 손을 내밀어 그 축 처진 손을 붙들어 들어 높입니다. 하지만 같은 장면이 반복됩니다. 이제 그의 시간이 다 되어 갑니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으니까요. 그는 자신에게 시간이 남아 있는 동안 열심히 손을 들어줍니다. 그가 일어나도록 말이지요. 하지만 사실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일어날 의지가 없다는 것을 말이지요.
사실 그걸 알고도 그렇게 오랫동안 꾸준히 손을 들어주는 이유는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그 일을 하라고 보낸 분의 의지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또다시 그 축 처진 몸을 일으켜 앉히고 상처 난 곳을 싸매 주고 또 일어나 걸을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줍니다. 이 일을 벌써 몇 번이나 해 왔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도 결과는 같습니다. 그는 다시 주저앉고 쓰러져 버립니다. 먼지가 푹푹 날리는 흙바닥 속에서 그는 자신은 이 상태가 편하니 그냥 두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못 박은 건 로마 병사들이었지만 그 예수님을 사형으로 몰고 간 건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살인자였고 구세주를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을 구원할 왕이 필요했을 뿐입니다. 실제로 예수님도 왕으로 삼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분이 가르치는 가르침 때문이 아니라 그분이 가진 사회적 능력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은 게 아니었습니다. 그저 그분이 가진 세속적 영향력에 잠깐 감화받았을 뿐입니다. 군중은 그 누구도 예수님이 전하는 말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못 박았습니다. 일은 로마인들이 했지만 살인은 그들이 저질렀습니다.
베드로는 유다인들에게 이 말을 전합니다. 베드로가 용기 있게 전할 수 있었던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마음속에는 용기가 있었습니다. 사실 베드로도 겁쟁이였습니다. 불가에서 그를 두고 예수와 같이 보았다는 여인의 말에 그는 모른다고 세 번이나 맹세까지 하며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그는 이제 의심을 버리고 믿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살아 계신 분이었고 베드로도 당신과 함께 영원한 나라에 초대하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더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약속받은 것을 상속받지 못할까 그것이 더 두렵습니다.
베드로는 다른 가르침을 전하는 게 아닙니다. 회개하고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으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면 자신에게 와 있는 성령을 받게 될 거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약속은 모든 이에게 주어지는 것이랍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도 이 약속이 전해집니다. 우리도 하느님이 부르시는 이들이고 그 약속을 선물받은 이들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은 날이 갈수록 하느님의 품에서 멀어져 가고 그때나 지금이나 타락한 세대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누가 있어 하느님을 찾는지 하느님은 언제나 굽어 살피면서 당신의 사제들과 예언자들을 보내십니다. 그리고 또다시 메시지를 전합니다.
"여러분은 이 타락한 세대로부터 자신을 구원하십시오."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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