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안에서 - 사도들의 모든 환난은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애시당초 예수님이 아니었더라면 그들이 부르심을 받을 이유도 없었을 것이고 예수님의 사명이 아니었으면 이 길을 계속 갈 이유도 없었을 것입니다. 사제들도 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다른 것 때문에 이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신앙 안에서 온갖 환난을 겪으며 살아가는 이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환난을 겪고 - 요한 사도가 예수님 안에서 겪은 것은 환대나 인정, 칭송 따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환난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면 전할수록 신앙에 더욱 충실하면 충실할수록 마치 자연스러운 귀결인 양 환난이 따라왔습니다. 이는 신앙 안에서 충실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언뜻 스스로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신앙에 더 충실하고 싶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신앙이 자신에게 득이 될 때 이야기입니다. 신앙이 조금이라도 손해를 끼치는 날 그들은 가차없이 신앙을 던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너무나 자연스런 결과로 신앙에 충실한 이들은 그런 위선자들로부터 배척당하고 환난을 겪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분의 나라에 같이 참여하여 - 우리가 이런 환난을 견딜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건 바로 그분의 나라이며 그 나라는 훗날 가게 될 나라가 아니라 이미 시작된 나라입니다. 신앙에 충실한 이들에게 그것은 헛된 약속이 아니며 지금 이미 시작된 약속입니다. 사실 신앙을 믿고 충실히 따르는 이들은 이미 그 나라를 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환난을 겪을수록 주님의 위로 외에 다른 위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서로 친한 시늉을 하지만 결국 저마다의 이해관계 속에서 배신을 하는 게 일상인 세상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위로는 영원에서 오는 것이고 그 위로 안에서 살아가는 이는 이미 하느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사람이 됩니다.
인내 - 환난의 자연스런 결과는 인내입니다. 환난이 다가오면 참아야 합니다. 그리고 인내는 모든 덕의 텃밭이 됩니다. 마치 밭을 잘 갈아야 거기에 좋은 열매들이 자라나듯이 인내는 덕들을 위한 좋은 밭을 만들어 줍니다. 인내가 없으면 자랄 수 있는 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겸손, 온유, 친절, 선행 모두 인내가 필요합니다. 현대의 큰 문제 중의 하나는 바로 이 인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빠른 성과를 원하고 어떻게든 고통을 경감시키길 원하고 안락하고 편안함을 바랍니다. 이런 경향은 신앙 안에서도 드러나서 사람들은 자신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면 그것이 무엇이든 참아내지 못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