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을 어둠으로 느끼느냐 하는 것은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누군가는 어마어마한 부귀영화를 빛으로 느끼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것을 어둠으로 느끼기도 합니다. 반대로 누군가는 미사를 싫고 귀찮고 어려운 어둠처럼 느끼지만 다른 누군가는 미사를 우리의 영혼을 밝히는 빛으로 느끼기도 합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밝혀 주시려는 빛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빛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어둠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적지 않은 이들은 신앙생활 안에서조차 엉뚱한 빛을 찾아다닙니다. 그들은 신앙이 자신의 현세의 안정을 보장해주고 병고를 치유해주고 곤란을 덜어주기를 바랍니다. 물론 하느님에게는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성경 안에서도 예수님은 수많은 이들의 곤란함을 덜어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그것 자체가 빛은 아닙니다. 그런 실마리는 여러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10명의 나병 환자를 고쳐 주시면서 예수님은 마지막에 당신에게 감사를 드리러 돌아온 이에게 ‘구원’을 선포하십니다. 즉, 병고의 치유와 구원의 선포가 분리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병을 치유받는 것 자체가 구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선물해 주시려는 빛은 영혼을 밝히는 빛이고 영원에 가 닿는 빛입니다. 그리고 그 반대의 것들이 어둠과 암흑을 형성합니다. 지금 현대의 한국 사회는 외적으로 어마어마한 부흥을 겪고 있지만 내적으로는 암흑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올바른 훈육을 상실해 버렸고 내면의 여러가지 가치와 덕들을 더는 추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욕구는 그 즉시 채워져야 하는 것이고 그렇게 되지 않을 때에 불행하다고 생각하면서 한탄을 하고 불만을 가지고 사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십자가야말로 우리에게 선물된 빛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의 어둠을 벗어버리는 훈련을 하고 나아가서 참된 빛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십자가는 빛이 됩니다.
자신들이 추구하던 것을 얻는 이들은 기뻐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은 십자가의 여정을 따르는 이들에게 구원을 선물하시고 그것을 기다려온 이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엉뚱한 것을 기다려온 이들에게 그 날은 심판의 날이 될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참된 빛을 빛으로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아니면 우리가 상상해 낸 빛을 빛으로 착각하고 있을까요? 한 번 고민해 볼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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