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가 있었습니다. 22살 먹은 청년이 사다리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합니다. 늦게 온 친지들이 이제 점심을 시작하고 있어서 먹으라고 시간을 허락했습니다. 그때 한 청년이 충혈된 눈으로 다가와서 묻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에 대해서 뭐라고 하셨어요?”
잠시 생각하고는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죽지 않아.”
청년은 자신이 생각하던 대답이 아니었던 모양인지 의아해합니다.
“우리는 죽지 않아. 저기 있는 건 그의 육신이야. 하지만 그의 영혼은 죽지 않아. 나는 죽은 사람을 위해서 장례식에 오는 게 아니야. 나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내 말을 들으라고 장례식에 오는거야. 조금 있다가 설명할 테니까 조금만 기다릴 수 있도록 해.”
그리고 친지들이 식사를 끝내었습니다. 식을 시작했지요.
“아까 한 청년이 물었습니다. ‘죽음’이 뭐냐고 말이지요. 그래서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죽지 않는다고 했지요. 저는 죽은 이를 위해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여러분을 위해서 온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실 우리는 죽지 않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계속 남아 있게 됩니다. 그리고 저마다 합당한 것을 받게 되지요. 우리의 영혼은 풍선과 같아서 거기에 뭘 집어 넣는가에 따라서 그 무게로 땅으로 떨어질 수도 있고, 반대로 하늘로 오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그 풍선을 쥐고 있는 손을 놓는 것일 뿐이지요. 지상의 삶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각각의 풍선은 저마다 채운 것을 바탕으로 땅으로 혹은 하늘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시기, 증오, 분노, 탐욕, 더러운 욕구 등을 채운 풍선은 당연히 땅으로 꺼지겠지요. 하지만 반대로 겸손, 인내, 희망, 사랑과 같은 것을 채운 풍선은 영원한 나라로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이런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거기 모인 가족들이 듣고 또 들으라고 설명을 했지요. 하지만 사실 얼굴에 다 나타납니다. 누가 듣고 누가 듣지 않는지 말이지요. 몇몇 술에 쩔은 남자들은 조롱하는 눈빛이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제 말을 귀담아 듣는 이들도 있었지요. 사제로서 사명을 다하기는 하지만 그런 어두컴컴한 시선을 바라보게 될 때는 참으로 힘이 듭니다. 살아 있어도 내면으로 죽은 이들인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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