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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내면에


우리가 하느님을 진실로 내면에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의 내면은 전혀 방어선이 구축되어 있지 않은 마을과 같습니다. 힘있는 자들이 무장을 하고 쳐들어오면 언제라도 무너질 준비가 되어 있는 도성과도 같지요. 그리고 실제로 이 일은 일어납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만 바로 그 교만을 통해서 어둠의 영이 자신의 수하들을 우리 내면에 집어넣고 있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으로 내면을 단장한 이들은 하느님 안에서 모든 힘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그분으로 인해서 다른 어둠의 영들이 우리 안에 자리잡지 못하게 되지요. 그러나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 주변에 아무런 문제나 고통이나 성가심이 없어진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가 될 것입니다. 우리 안에 하느님이 자리하면 주변의 공격이 더욱 극심해집니다. 왜냐하면 악마는 이미 더러워진 영을 공격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악마는 맑은 영, 하느님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영에 지독한 시기심을 느끼고 그 영혼을 공략합니다. 그래서 그 영혼이 좋아할만한 온갖 미끼를 던져서 그 영혼을 유혹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술이 될 수도 있고, 재화에 대한 욕심이나 권력에 대한 유혹이 될 수도 있고, 또는 인간관계에 대한 탐욕이 될 수도 있습니다. 더 많은 친구를 얻으려는 욕심이 나를 엉뚱한 곳으로 이끌어 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악마의 유혹이 처음부터 그 시커먼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전혀 반대입니다. 악마는 심지어 빛의 영으로까지 자신을 속여서 우리에게 드러나기도 합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무언가, 아니면 환상과 같은 것에 자꾸 중요성을 두고 그것으로 자신의 신앙의 표지를 삼으려고 하면 악마는 당장에 자신을 꾸며 빛의 영으로 가장하고 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이 글은 이해할 수 있는 사람만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며 수많은 이들이 넘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환시, 환청, 기이한 일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내면에 받아들이는 것은 가장 기초적인 신앙생활을 묵묵히 충실히 해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때로 하느님의 손길에 의해서 ‘수동적으로’ 들어올려지는 경우는 있어도 누군가가 거룩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으로 억지로 무언가를 보고 싶어하고 듣고 싶어하다가는 당장에 어둠의 하수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엇나간 이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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