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마음이 하느님을 떠나 방황하였으나, 이제는 돌아서서 열 배로 열심히 그분을 찾아야 한다. 그러면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신 그분께서 너희를 구원하시고, 너희에게 영원한 기쁨을 안겨 주시리라.” (바룩 4,28-29)
성경의 말씀은 사실 ‘애정’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애정이 모두에게 동일하게 따스하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서로 다른 입장에 위치해 있기 때문입니다.
약속 시간을 지켜 달라는 보좌 신부님의 마음을 다한 부탁은 약속시간을 이미 지키는 교리교사들에게는 ‘좋은 충고’가 되고 개인적인 특별한 사정으로 늦게 나오는 이들에게는 ‘새로운 다짐’의 기회가 되며, 게을러 터져서 늦게 나오는 이들에게는 ‘성가신 말’이 됩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우리들을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이끄는 희망의 말씀입니다. 하지만 모두에게 그렇지는 않으니 바로 악한 길을 걷고 있는 자들에게는 ‘경고’의 말이 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고 사랑할 마음도 없는 이들, 자신의 욕구에 사로잡혀 제 잇속만 채울 생각에 급급한 이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은 지독히도 성가신 말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말씀에 다가서는 여러 모습을 결정짓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말을 찾고 구하기 위해서라면 사람들은 기꺼이 생명의 말씀에 다가서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누가 성가신 말을 일부러 들으려 하고, 귀찮은 말을 일부러 들으려 하겠습니까? 그래서 어둠의 길에 접어든 이들은 더욱 더 어둠이 가중되게 되고, 반대로 빛의 길에 머무르는 사람은 빛을 향해서 더욱 더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의 메세지는 간단합니다. ‘하느님에게로 돌아서라’라는 것이지요. 우리의 마음이 하느님에게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고, 또 너무나 쉽게 세상에 다가선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계시기에 우리에게 주시는 메세지인 것입니다. 모쪼록 이 생명의 말씀이 우리에게 위안이 되는 날까지 충실히 하느님을 따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성경의 말씀은 사실 ‘애정’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애정이 모두에게 동일하게 따스하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서로 다른 입장에 위치해 있기 때문입니다.
약속 시간을 지켜 달라는 보좌 신부님의 마음을 다한 부탁은 약속시간을 이미 지키는 교리교사들에게는 ‘좋은 충고’가 되고 개인적인 특별한 사정으로 늦게 나오는 이들에게는 ‘새로운 다짐’의 기회가 되며, 게을러 터져서 늦게 나오는 이들에게는 ‘성가신 말’이 됩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우리들을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이끄는 희망의 말씀입니다. 하지만 모두에게 그렇지는 않으니 바로 악한 길을 걷고 있는 자들에게는 ‘경고’의 말이 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고 사랑할 마음도 없는 이들, 자신의 욕구에 사로잡혀 제 잇속만 채울 생각에 급급한 이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은 지독히도 성가신 말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말씀에 다가서는 여러 모습을 결정짓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말을 찾고 구하기 위해서라면 사람들은 기꺼이 생명의 말씀에 다가서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누가 성가신 말을 일부러 들으려 하고, 귀찮은 말을 일부러 들으려 하겠습니까? 그래서 어둠의 길에 접어든 이들은 더욱 더 어둠이 가중되게 되고, 반대로 빛의 길에 머무르는 사람은 빛을 향해서 더욱 더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의 메세지는 간단합니다. ‘하느님에게로 돌아서라’라는 것이지요. 우리의 마음이 하느님에게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고, 또 너무나 쉽게 세상에 다가선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계시기에 우리에게 주시는 메세지인 것입니다. 모쪼록 이 생명의 말씀이 우리에게 위안이 되는 날까지 충실히 하느님을 따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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