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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루카 11,13)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일까요? 10억짜리 차를 한 대 사주면 정말 좋은 것이 되는 걸까요? 하지만 그 차는 점점 망가져 갈 것이고 유지비만 해도 엄청날 것입니다. 아니면 평생을 다 써도 사라지지 않을 엄청난 재산을 주면 될까요? 하지만 그 재산이 있다고 해서 인간의 얼굴에 웃음꽃이 만연하게 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거룩한 영’입니다. 즉, 인간에게는 외적으로 더해지는 무언가가 필요한 게 아니라 바로 내면의 영을 새롭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약속하셨고 우리들은 누구나 원하는 이는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성령은 우리의 내면을 새롭게 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의 내면을 ‘하느님스럽게’ 만들어주지요. 왜냐하면 성령께서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느님스럽게 되면 모든 것에 대한 관점 자체가 달라집니다. 전에는 비싼 것, 사치스러운 것을 받아야 뭔가 득이 되고 좋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내면의 가치들에 눈을 뜨게 됩니다. 값비싼 옷을 입지 않아도 선량한 마음을 지닌 이가 있으면 그와 더불어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사물들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 우리 내면에서 정하는 문제입니다. 전에는 좋아하던 음식이 한번 크게 질리고 난 뒤에는 전처럼 맛있게 느껴지지 않는 경험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 전에는 그렇게 재미나던 놀이가 나이가 들면서 전혀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 음식이나 놀이가 바뀐 게 아니라 바로 우리의 내면이 바뀐 것이지요.

성령을 지닌 사람은 모든 것의 참된 가치를 바라보고 그것을 그대로 수용하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의 가치를 재조명하게 되지요. 인간에게 영광을 받던 것들이 하느님에게 역겹게 느껴지고, 반대로 아무도 관심갖지 않던 것들에 새로 마음을 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에게 우리가 청해야 할 유일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세상의 어느 유익이 아니라 바로 ‘성령’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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