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 (로마 1,17)
어제는 반모임이 있었습니다. 가족이 저를 초대했고 이웃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들었지요. 하지만 볼리비아 타임이라는 것이 있어서 사람들이 오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그래서 그 시간을 이용해서 모인 사람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하나 묻고 싶습니다. 하느님이 계십니까?”
사람들이 고개를 주억거립니다.
“좋습니다. 하지만 그거 아십니까? 우리는 머리로는 하느님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하느님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 손에 든 책이 보이시지요? 이 책은 실제하고 있습니다. 제 손에 들린 책은 볼 수 있고 두드리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지요. 냄새도 나고 감촉도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의 감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있다고 믿지요. 하지만 그거 아십니까? 사실 우리는 보아서 믿는 게 아니라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동전을 들고 간단한 트릭으로 다른 손으로 옮긴 다음에 동전이 없는 손을 내밀었습니다.)
여기 동전이 있습니까?”
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동전이 없습니다. 다만 여러분들이 동전이 있다고 믿은 것이지요.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속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은 우리를 속이기도 하지요. 텔레비전에서 광고하는 것이 전부 옳은 것은 아닙니다. 대기업들은 자신의 상품을 팔기 위해서 일단의 연구진에게 연구를 촉구하고 한 상품의 장점을 찾아내지요. 그리고 그 상품의 단점은 하나도 소개하지 않고 자신들이 연구한 장점만을 내세워 물건을 팔아 치웁니다. 그러면 우리는 뉴스에 나오는 그 제품의 장점만 듣고는 그것을 사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에게는 육체적인 감각 외에도 또다른 감각이 있습니다. 바로 영적 감각,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이 실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하지만 과연 누가 믿을까요? 우리는 하느님을 믿지 못합니다. 오히려 돈을, 재물을 더 믿지요. 우리에게는 하느님에게 합당한 믿음이 없습니다.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따가 우리가 나눌 복음도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이 성경이라는 종이 쪼가리에 적힌 내용이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하느님을 믿지 못하는데 그분의 외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말씀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믿음이 없으면 이 모든 것은 그냥 우스꽝스러운 행위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는 중에 사람들이 왔고 복음 나누기를 시작했습니다. 과연 거기 모였던 사람들은 믿음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을까요? 모를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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