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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명령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마르 16,15)

명령입니다. 권유나 제안이 아닙니다. 명령입니다. 명령은 윗 사람이 아랫 사람에게 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명령을 따르는 것으로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시라는 것을 반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려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세례 증명서가 있다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에 따라 살아갈 때에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변을 둘러보면 진실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을 많이 만나볼 수도 있게 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따를 마음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신앙을 옵션으로 생각하고 멸망 당하는 게 두려워서 보험처럼 신앙을 붙들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최소한의 규정을 지키는 것으로 자신의 신앙생활을 다 이루고 있다고 착각하는 이들이지요. 그들에게는 하느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없고 하다못해 눈에 보이는 이웃도 사랑하지 못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기도할 줄 모르며, 세상의 모든 것에 관심을 두는 한 편 하느님이나 거룩한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해외로 여행을 가서 성당의 화려한 외모를 구경할 줄은 알지만 초라한 성당에 들어가서 하느님 대전에 진실한 마음으로 예배드릴 줄은 모르고, 술에 취할 줄은 알지만 성령에 취할 줄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전례는 형식에 불과하고 기도는 자랑하고 드러내기에 바쁘고 재계를 지키는 날에는 죽을 상이 되곤 합니다.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인 행위가 아니라 울며 겨자 먹기로 억지로 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이를 돕고 나면 반드시 이름이 알려져야 하고 본당에서는 높은 지위를 차지하려고 난리를 치곤 합니다.

그러니 주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그분의 명령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말은 안중에도 없고 대신에 흥미로운 사회 기사나 정치 기사, 연예 기사가 하나 뜨면 그건 어떻게든 전해 보겠다고 안달입니다.

그러는 동안 묵묵히 자신의 일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숨어 있습니다. 이들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들 안에 숨겨진 보물은 드러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묵묵히 주님의 명령을 따라 살아갑니다. 자신을 더욱 거룩히 성화시키고 세상에 하느님의 빛을 전하는 이들입니다. 착하고 온순하고 정의롭고 정직한 이들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만나본 사람은 그들을 알아봅니다. 그들에게서 뭔가 다른 것을 느끼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해내지 못합니다. 그렇게 그들의 빛과 소금은 전해지게 되고 사람들은 그들의 빛을 보고, 그들의 짠 맛을 느끼고 하느님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적지 상당히 많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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