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하는 말을 듣고 우리는 분별을 합니다. 헌데 그 분별을 ‘나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즉 나에게 이득이 되는가 아닌가 하는 것이 분별의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들은 상대를 진실하게 분별하지 못합니다. 이들은 ‘진리’와는 상관이 없는 이들입니다. 상대의 말이 아무리 진실해도 나의 이득과 관계가 없으면 내쳐버리는 사람들이고, 반대로 상대의 말이 거짓이라도 나의 이득과 관계가 되면 받아들이는 이들입니다. 이들이 좋아하는 사람은 ‘거짓 예언자’입니다.
가령 아빠 엄마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아이가 있다고 한다면 어느 날인가 식탁 자리에서 ‘정직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는 그 가르침을 신중하게 듣고 자신의 삶을 고치기보다는 그 가르침을 내던져 버리고 아빠 엄마를 내면으로 비난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아이의 삶 자체가 어둠에 감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어둠에 사로잡힌 사람은 진리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러나 정반대로 누군가 음탕하고 사악한 친구가 와서 아빠 엄마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왜 거짓말을 하는 것이 필요한지를 도와주는 이야기를 한다면 이 아이는 기뻐하며 그 가르침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자신 안에 있는 거짓말에 대한 선호를 바탕으로 더 큰 죄악을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우리는 일상 안에서 얼마나 진정한 가르침을 추구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달리 말해 우리가 얼마나 올바른 길을 걸어가고 있는가, 나의 삶의 방향성이 얼마나 올곧은가 하는 질문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진실성’을 바탕으로 분별을 해야 합니다. 말하는 상대가 누구이든 그가 말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진실성의 바탕은 선을 향한 방향, 즉 하느님을 향한 방향이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성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고요함 가운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고요함은 단순한 외적 침묵만이 아니라 내적인 침묵을 의미합니다. 흥분된 상태에서 내리는 결정은 쉽게 엇나갑니다. 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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