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모든 과정은 신비에 감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이 성소에 들어서는 여정은 저마다 다 다르고 그 과정 역시도 다 다르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어떤 영혼을 선택하시는 것인지? 그리고 저마다 각자의 응답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지 그것을 통틀어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모든 일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섭리 안에서 이루시는 일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과정을 찬찬히 검토해 보고자 한다.
출발
먼저는 아예 모르는 것을 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하고 듣지도 못한 것을 바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성소에 있어서 '초대'는 그 시작을 위해서 너무나 중요하다. 그 초대가 반드시 '신학교'와 직접적으로 연관될 필요는 없다. 다만 누군가 초자연적인 이상을 향해 초대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래서 성소의 시작은 신학교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시작점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초대는 스스로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그 첫 시작점을 전달하는 것은 외부로부터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특히 부모의 역할은 중요한데 부모의 조력 속에서 성소의 길을 가는 것과 부모의 반대, 혹은 무관심 속에서 성소의 길을 가는 것은 너무나도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사람은 충분히 강하지 못해서 시작부터 그 의지를 꺾인다면 쉽게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래서 부모는 기도해 주지는 못할지언정 적어도 성소의 싹이 자라난 자녀에게 반대는 하지 말아야 한다.
부르심
다음으로는 부르심이다. 꿈은 누구나 꿀 수 있다. 어린 시절 한 번쯤 소방관이나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꿈꾸는 것과 실제로 그 길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다르다. 어린 시절 표현되는 성소의 싹은 좋은 계기이지만 사실 그건 성당을 다니는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상상해 볼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본격적인 '부르심'이라고 부르기는 쉽지 않다. 실제의 부르심은 항상 내가 무언가를 내려 놓아야 하는 결정을 통해서 선물된다. 부르심은 길 가다가 누군가가 길을 물어보는 수준의 질문이 아니라 내가 가고 있는 여정에서 '결정'이 요구되는 어느정도는 심각한 초대로 주어진다. 하느님은 아무나 부르지 않는다. 자신의 삶의 길에서 중대한 선택을 할 만큼 성장하고 내면이 굳은 사람에게 부르심을 선물하신다.
응답
이제는 응답이다. 사실 본격적인 부르심이 있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기대를 거신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자동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그렇게 되면 인간이 자유를 가지고 있는 의미가 없다. 부르심을 앞둔 사람은 '응답'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 응답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 있다. 누가 억지로 등을 떠밀 수도 없고 온전히 자신이 온전한 의지로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응답이다. 다만 우리는 뒤에 올 일들을 모두 예상하고 응답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우리를 불러주시는 분을 신뢰하고 응답한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고 그 외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에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 응답을 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성령의 힘에 도움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 응답은 1회성으로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매 순간에 우리의 온 삶을 다해서 응답해야 한다.
성장
성소는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서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의 성소에 더욱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이는 하느님으로부터 더 큰 소명을 받게 된다. 다만 그 소명이라는 것을 인간적인 시선으로만 이해해서 외적인 일의 규모나 세속적 직분의 우위로 가늠하는 것은 금물이다. 하느님의 소명은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으며 더 소중한 소명일수록 더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 다만 하느님의 소명을 받은 이가 얼마나 더 적극적으로 응답하는가에 따라서 하느님은 그에게 더 많은 달란트를 맡겨 주신다. 그렇게 그의 성소가 조용히 성장해간다. 하느님은 그가 청하는 은총을 거절하지 않으실 것이며 그를 통해서 하느님의 뜻이 조용히 그 사명을 완수해간다. 하느님이 바라시는 것은 뚜렷하다. 그것은 더 많은 이가 구원을 얻는 것이다. 참된 성소를 지닌 사람은 자신의 이 사명을 성실히 수행해 나간다.
박해
물론 등불은 밝혀서 등경 위에 두는 법이다. 다만 그것을 볼 눈이 없는 자들은 그 등불을 보아도그것이 빛인지 알지 못한다. 더구나 어둠에 싸여 있는 사람은 그 빛을 보고 환대하기는 커녕 반감을 품기 시작한다. 그래서 참된 성소를 지닌 사람들 곁에는 그를 사랑해주는 이들이 있지만 반대로 그 빛을 꺼뜨리고 싶어하는 이들도 있다. 흔히 그런 이들은 악습을 지니고 있고 다른 이의 어두운 소문을 퍼뜨리는 것을 좋아하며 거짓말을 일상적으로 하기도 하고 분란을 조장하는 데에 특화되어 있다. 그들이 맺는 열매로 그들을 알아보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식적인 일의 결과로 그들을 분별하지 말고 실제로 그들이 하는 일을 보아야 한다. 소위 성당에서 '열심'하다는 이들에게 속아 넘어가서는 안된다. 참된 열매를 맺는 사람은 자신이 처한 직위에 연연하지 않으며 자신이 해야 할 바를 성실하게 이룰 뿐이다.
완성
하느님은 당신이 키운 열매를 언제 추수하실지 아신다. 그래서 성소의 여정을 걷는 이에게는 그 날이 자신이 꿈꿔온 날이 된다. 그들은 미련없이 떠날 것이며 이는 지상에서도 드러난다. 그들은 영원히 살 듯이 일하지만 떠날 때에는 그 어떤 미련도 없이 떠날 수 있다. 그들에게 지상의 여러가지 일들과 관계들은 하느님께서 맡겨 주신 것이기에 하느님이 부르시면 그들은 그것들을 저항없이 내려놓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소명을 다 한 것이고 하느님은 그 열매를 추수해 가실 것이다. 설령 그들이 다른 사람보다 일찍 생을 마감한다고 해서 실망할 이유도 없다. 자신의 성소에 열중하는 사람은 오히려 이른 나이에 필요한 덕을 완성한 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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