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온순함이 양의 성정을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양의 핵심은 목자의 목소리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온순해도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채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의 목소리, 즉 낯선 사람의 목소리에 반응하고 있다면 그를 양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그런 이는 그저 성정이 온순한 들짐승일 뿐입니다.
목자의 목소리는 어떻게 알아볼까요? 그것은 그 목소리가 이끄는 방향에서 드러납니다. 목자는 양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들을 부릅니다. 목자가 하는 모든 활동은 구원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구원으로의 초대는 마냥 쉬운 길만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양은 힘을 길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자의 목소리는 때로 우리를 고난으로 초대하기도 합니다. 물론 목자가 고난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가시밭길을 걸어야 할 때가 있기에 그 방향으로 초대하다 보면 고난이 생기는 것 뿐입니다.
이는 오늘날의 부모님의 자녀 훈육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자녀가 원하는 것을 무턱대고 다 해주기만 하는 부모는 옳은 부모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원하는 것을 얻기만 하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참을성도 길러 주어야 하고 때로는 양보하는 법도 가르쳐야 하며 때로는 용기있게 불의에 맞서는 법도 가르쳐야 올바른 부모가 됩니다. 그저 사달라는 걸 모조리 다 사주고, 해달라는 걸 모조리 대신해 주기만 하면 그 아이는 반드시 그릇된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양들은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 듣습니다. 자신을 부르고 있는 사람이 자신을 어디로 이끄는지 양들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속이는 자들이 많이 있으니 그들은 목자인 척 양들을 이끌어 그들을 죽음의 길로 향하게 합니다. 그러니 정신을 차리고 목자의 목소리를 식별해야 합니다. 그저 '인도자'가 하는 말이라고 무턱대고 믿을 것이 아니라 그가 맺는 열매로 그를 식별해야 합니다.
특별히 오늘은 성소주일입니다. 예수님은 이 성소가 메마른 시대에도 여전히 성소의 길을 걷고자 하는 젊은이를 찾고 있습니다. 사실 성소는 성소주일 만이 아니라 어느 때고 영혼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목자를 사랑하게 되어 목자의 길을 따르려는 많은 젊은이들이 생겨나기를 기도해 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