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라는 것은 물건이 아닙니다. 평화라는 것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평화는 평화로운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평화는 준다기보다 평화를 누리도록 준비시켜 준다는 것이 더 합당한 표현입니다.
우리가 좀 더 이해하기 쉬운 것으로 바꾸어보자면 우리는 서울대에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그냥 서울대 졸업장을 받고 그 스펙을 누리기만 원합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서울대를 간다는 의미는 그만한 수준의 학식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서울대를 졸업하게 해 주겠다는 말을 대상으로 파악하는 사람은 나는 공부를 하기 싫고 고생하기 싫지만 그 열매인 졸업장을 원하고 누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원래 서울대를 졸업하게 해 주겠다는 말의 본질적인 의미는 그만한 수준의 학식과 자격을 갖춘 사람으로 성장시켜 주겠다는 의미입니다. 대학은 학업을 성장시키고 인격을 성숙시키는 장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것은 '평화'입니다. 그것은 평화 그 자체를 대상화해서 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이룰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말이 가능하게 됩니다.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루카 10,5-6)
평화를 받을 줄 아는 사람에게 예수님의 제자들은 평화 그 자체입니다. 내가 몰랐던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고 그것을 성취하는 법을 잘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평화를 싫어하는 사람, 달리 말해서 평화를 배우는 것을 귀찮아하는 사람에게는 그들은 성가신 존재입니다. 자신들이 구축해 놓은 안정, 이미 누리고 있는 세속적 안정을 불안하게 만들고 우리를 불편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평화를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렇게 그들은 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제자들은 때가 되면 떠나갈 뿐입니다. 사실 온 것도 자신들의 의지로 온 게 아닙니다. 보냄을 받아서 왔고 이제 때가 되면 다시 보냄을 받아 떠나갑니다. 세상에는 참으로 이리들이 많습니다. 싸움박질을 좋아하는 그 종족은 뭐든 물어 뜯으려고 하고 특히 '양들'은 그들의 좋은 먹잇감이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스승을 닮은 양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어린 양이 되어 목자가 시키는 일을 합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루카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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