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반만 잘라내면 완벽하게 우리의 일상과 맞아 떨어집니다. 오늘 이야기에서 앞부분, 즉 임금에게 만 달란트를 탕감받는 부분만 없앨 수 있다면 나머지는 우리가 늘 하는 짓입니다. 누가 나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지면 그는 반드시 갚아야 하고 필요하다면 고소 고발도 하고 감옥에도 집어 넣는 것이 우리의 도리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세상의 이치로는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그렇고 부부 사이에도 그렇습니다. 철저하게 이익을 따지고 손해보지 않으려는 삶의 태도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현실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요구하는 이가 먼저 다른 더 큰 이에게 많은 것을 탕감받은 상태라면 말이 달라집니다. 이 사람은 자기의 주제를 모르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이 처한 현실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그리고 우리가 받은 세례가 어떤 의미인지 안다면 우리는 먼저 많은 것을 용서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의 종처럼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망각한 사람처럼 처신한다면 우리에게 자비를 보이신 하느님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두 부류의 신앙인이 나뉩니다. 자신이 먼저 많은 것을 용서받았다는 것을 이해하는 신앙인과 그렇지 않은 신앙인입니다. 앞선 신앙인들은 일상을 자신에게 허락된 기회로 이해하고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갑니다. 반대로 후자는 여전히 불만족스럽고 탐욕스러우며 현실적인 이득을 계산하면서 살아갑니다. 모든 것은 저마다의 행실대로 결과를 맞이하게 됩니다. 하느님은 현세에서는 자비로우신 분이시지만 내세에서는 가장 정의로우신 분이실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