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어린이에 대해서 배우면서 하느님의 뜻을 순하게 받아들이는 이라는 것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은 그 반대의 케이스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저항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죄라는 것은 특정 행동의 준수 여부를 가리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느님에게 가까워지느냐 멀어지느냐를 기준으로 합니다. 죄는 바로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는 방향입니다. 따라서 외적으로 성당 가까이에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의인이 되고 바깥에 머무른다고 해서 악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하는가가 더 큰 기준점입니다. 그리고 그 기준점을 눈에 보이는 장면으로 묘사한 것이 오늘 복음입니다.
우리는 지옥이라는 곳을 상상하기를 그곳에 가기 싫은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억지로 잔뜩 모인 곳을 상상합니다. 하지만 실제 지옥은 그들을 잡으려는 선의의 뜻을 모조리 물리친 사람이 자신의 내면의 뜻을 완전히 굳힌 상태로 모여든 곳입니다. 즉 그들은 천국에 가기 싫어서 지옥에 모여든 셈입니다.
사실 죄를 짓는 이의 내면은 선한 이들이 이해하기 힘듭니다. 선한 이들에게는 죄를 짓는 것 자체가 아픔으로 다가오지만 악인들에게는 오히려 반대로 선하게 처신하고 살아가는 것이 그들에게는 힘든 일이 됩니다. 동네에서 누군가를 험담하는 자매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면 그것을 얼마나 힘겨워할지는 충분히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언제나 차분하고 정적인 사람에게 억지로 누구 흉을 보게 하면 그 사람은 그것을 힘들어 합니다.
1독서는 그 장면을 극적으로 묘사합니다.
“너는 저 도성 가운데로, 예루살렘 가운데로 돌아다니면서, 그 안에서 저질러지는 그 모든 역겨운 짓 때문에 탄식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해 놓아라.” (에제 9,4)
성당을 술판으로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장면을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모이면 누군가를 험담하기를 너무나도 즐기는 악인들이 있는가 하면 그 역겨운 짓을 탄식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결국 사람은 저마다의 행실로 심판받게 마련입니다.
“너희는 저 사람의 뒤를 따라 도성을 돌아다니며 쳐 죽여라. 동정하지도 말고 불쌍히 여기지도 마라. 늙은이도 젊은이도, 처녀도 어린아이도 아낙네도 다 죽여 없애라. 그러나 이마에 표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건드리지 마라. 내 성전에서부터 시작하여라.” (에제 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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