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에제키엘 예언서는 상상하면 끔찍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뼈로 가득찬 계곡입니다. 모르긴 해도 과거에는 이런 장면들이 간간이 보였을 것입니다. 전쟁이나 역병으로 사람들이 떼로 죽어나가면 그런 이들을 모아다가 구렁에다 던져 넣곤 했겠지요. 그러면 훗날에 그곳에는 뼈만 가득한 죽음의 계곡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영적 상태를 이렇게 비유합니다. 즉, 죽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뼈만 가득한 곳, 그것이 신심이 메마르다 못해 뼈만 남아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사실 현대 교회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과거의 생기가 하나도 없이 늙고 병들어 있는 교회들, 젊은이들은 모조리 떠나버리고 그나마 있던 의욕들마저 메말라가고 뭘 해도 안된다는 죽은 사고만 가득히 팽배해 있는 곳, 바로 뼈로 뒤덮인 계곡과 같은 신앙의 현실입니다.
이런 가운데 하느님께서 예언자에게 묻습니다.
“사람의 아들아, 이 뼈들이 살아날 수 있겠느냐?”
참으로 도전적인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절망이 가득한 곳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겠느냐는 질문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시선으로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될 리가 없어 보입니다. 아니, 안됩니다.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그래서 예언자는 솔직하게 말합니다.
“주 하느님, 당신께서 아십니다.”
언뜻 자연스러운 대답인 것 같지만, 한편으로 하느님에게 희망을 두는 대답입니다. 그의 답변 속에는 그 질문을 하시는 분에 대한 능력에 기대가 있습니다. 그래서 안된다고 단호히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신 하느님 당신이 알고 계신다고 말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안될 일이면 하느님이 아예 묻지도 않을 테니까요. 당신이 보기에도 안되는 일이면 안되는 것이니 애시당초 물어볼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을 알고 계십니다. 당신에게는 불가능이 없고 당신이 묻는 이유는 가능성이 보이기 때문에 물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은 알고 계십니다.
헌데 하느님은 당신이 홀로 일하지 않으십니다. 당신이 하려는 일을 '예언자'를 통해서 하십니다. 그래서 예언자에게 예언을 하라고 시킵니다. 인간의 시선으로는 말도 안되는 일을 되는 일인 것처럼 말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다음의 말을 시킵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주님의 말을 들어라. 주 하느님이 뼈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너희에게 숨을 불어넣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겠다. 너희에게 힘줄을 놓고 살이 오르게 하며 너희를 살갗으로 씌운 다음,
너희에게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게 하겠다.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사실 하느님의 존재감은 그렇게 드러납니다. 가장 힘이 없어 보이는 곳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즉, 아무런 희망도 없고 절망만 가득한 곳, 인간의 노력이 그 어떤 결과도 가져올 수 없는 곳에 하느님께서 일을 하십니다. 그러면 불가능했던 상황이 가능함으로 뒤바뀌고 그 열매가 쏟아져 들어오게 됩니다. 이집트 앞에 선 이스라엘이 그러했고, 골리앗 앞에 선 다윗이 그러했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그러했습니다. 과거 순교자의 시절 온통 꺼져가던 신앙의 불씨가 되살아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은 불가능에서 당신의 능력을 보이는 분이십니다.
내 백성아, 내가 이렇게 너희 무덤을 열고, 그 무덤에서 너희를 끌어 올리면,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린 다음, 너희 땅으로 데려다 놓겠다. 그제야 너희는, 나 주님은 말하고 그대로 실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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