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하늘 나라를 거부한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건 보기에 딱히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언뜻 정당해 보이는 이유를 말했습니다. '밭을 사서 보러 가야 한다.', '겨릿소 다섯쌍을 샀는데 그것을 부려 보러 간다.', '방금 장가를 들었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유일한 탓은 '거부'한 것 외에는 없습니다. 다만 그들의 유일한 탓은 초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현시대의 신앙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딱히 나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저 하느님의 초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 뿐입니다. 그들은 쉽게 여러가지 이유를 대면서 하느님과의 관계를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치명적이고 핵심적인 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내면 속에 사실상 하느님 보다 더 중요한 것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에서 벗어나게 되는 이들은 뭔가 심각한 범죄를 저질러서 제외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하느님이 최종 주인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이 마지막 목표점이 아닐 때에도 인간은 언뜻 외적으로 착해 보이는 듯이 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볼 수 있는 것만을 바라보고 살기 때문에 그들의 눈앞에서 몇 번 착해 보이는 생활을 하면 사람들은 그들을 '좋은 사람'이라고 칭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선함과 착함의 본질은 선해 보이는 외적 활동이 아니라 나의 모든 행동의 근거가 '선'을 목적으로 할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극히 사소해 보이는 일상의 활동이라도 하느님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다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미 가지고 있던 초대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가장 큰 죄이고 그것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서 자주 발견되는 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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