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꾸준하게 신앙의 본질을 다루고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꾸준하게 왜곡시키고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어 갔습니다. 사실 우리의 영혼이 원하는 것은 단순합니다. 그것은 구원이고 행복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구원을 받는 데에 어마어마한 조건을 붙이고 행복하게 해 주겠다면서 실상은 우리를 불행으로 이끌어 들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하지만 집주인은 그들을 '불의를 일삼는 자들'로 규정해 버리고 맙니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날 현실입니다. 과거부터 교회 안에는 자신이 정한 구원의 규정을 준수하는 이들이 생겨났고 그러한 규정들이 보편화되어 본질을 상실한 교회가 되어 버린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저마다 '의로움'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의로움이 보다 참된 의로움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몸을 해치고 있다면 더 큰 범주에서 그것은 나쁜 일이 됩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저마다 좋은 일을 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것이 하느님께서 본질적으로 바라시는 것을 해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원받을 사람은 적냐는 질문은 그 자체로 '구원'이라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직도 그 질문을 하는 이가 구원이 도대체 무엇인지 몰라 사람들이 정해 놓은 구원의 방식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입니다. 교회가 정해놓은 규정과 규범을 모조리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일까요? 당연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사람의 대답에 답변을 하지 않고 엉뚱한 말씀을 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다만 좁을 뿐입니다. 그 문이 어디있는지 알고 그 문을 어떻게 통과하는지 아는 분에게 다가서지 않으면 우리는 그 문을 찾지도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우리 앞에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서 계십니다. 과연 우리는 그 문이 어디 있는지 몰랐다고 할 수 있을까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