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의 원칙은 뚜렷하고 이는 세상 사람들도 다 아는 바이고 그대로 실천하는 바입니다.
"더 많이 받은 사람이 더 감사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신앙 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신앙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받는가?"
오늘 한 분이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손에 선물을 쥐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분에게 달리 드릴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머리에 조용히 손을 얹고 안수를 해 드렸습니다.
이 장면에서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것은 손에 쥐어진 것 뿐입니다. 그들에게 사제가 주는 거룩한 축복의 안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믿는 이들에게는 다릅니다. 그들에게는 세상의 것이 다 사라져도 하느님의 축복이 나와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인은 '향유'를 바라봅니다. 하지만 의인은 '용서와 구원'을 바라봅니다. 서로 탐하는 게 달라서 얻는 것도 다릅니다. 그리고 이런 현실은 오늘날의 신앙 환경에서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사람들은 하느님의 은총을 바라는 길을 점점 상실해 가고 있습니다. 뭔가 결과가 있어야, 눈에 보이는 뭔가가 있어야 얻었다고만 생각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주는 향유를 아까워하고 여인이 받는 용서를 의미없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죄인은 기껏해야 향유를 아낀 값이나 벌고 의인은 구원의 기쁨을 얻어 누립니다.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는지는 속일 수 없고 우리는 이미 우리가 추구하는 것을 얻고 누리고 있습니다. 자신이 해야 하는 최소한의 신앙 의무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얻을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주일미사나 지키고 판공이나 보는 것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앙의 세금이나 겨우 낼 생각을 하는 사람은 주님에게서 무언가 얻을 생각을 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무언가 주어지더라도 그것을 의미 없게 여길 것이고 하찮게 여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주님도 주지 않습니다.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않고 돼지에게 진주를 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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