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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는 것, 그들이 행하는 것

사순2주 화요일

자로 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기준이 되는 '자'는 대체로 정확하며 그 눈금은 오차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헌데 문제는 재려는 대상입니다.
이 대상은 이렇게 저렇게 변하기 일쑤입니다.
전에 없던 것도 생기고 생겼던 것도 사라져 버립니다.
헌데 그것을 측정할 '자'를 만든 사람들은
자신이 지닌 자를 그렇게 쉽게 변화시키려 들지 않습니다.

이해는 됩니다.
뭐든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그 기준이 이리 저리 변해 버린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예수님은 어기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왜냐면 (구원에 관계되지 않는 이상) 합당한 권위의 명령에 순명하는 것은 언제나 바람직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 편 예수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구절들이 있으니
이어지는 설명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것'과 그들의 '행실'은 과연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요?
그들이 말하는 것은 무엇이고?
그들의 행실은 무엇일까요?

그들이 말하는 것들은 '진리'입니다.
그들은 함부로 거짓을 발설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식견이 있고 많은 좋은 것들을 배워 머리로 알고 있고
올바른 것들을 분별해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행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그들은 옳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그들 스스로 실천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다른 이에게 짐을 잔뜩 지우고
정작 자기 스스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진리를 따르고 거짓을 배척하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작업을 여러분 스스로부터 먼저 하십시오.
하지만 이 권고를 이상한 쪽으로 따르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상한 쪽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말하고 모든 것을 실천하려는 것,
즉 가능한 범위에서의 최상급에 도달하려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을 높아지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라는 예수님의 마지막 충고를 잊어 버린다면
우리는 쉽사리 이 오류에 빠져 버리고 말게 됩니다.

섬기는 사람이 되십시오.
모든 이의 종이 되십시오.
그저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진정 자신을 낮은 자로 생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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