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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직하고 되새기기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루카 2,19) 준비되지 않은 말은 미숙한 요리와 같습니다. 뜸을 들이지 않은 밥은 서걱서걱 씹히게 되지요. 요리는 제대로 해서 먹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상황들은 우리가 잘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받아들이고 성찰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덜 익은 쌀처럼 됩니다. 많은 이가 이런 행동을 곧잘 합니다. 주변의 상황에 즉각 반응하는 것이지요. 특히나 ‘속도’와 ‘효율성’이 중요시되는 오늘날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늦게 반응하면 큰일이라도 난다고 생각하고 대화의 자리에서 언제나 먼저 조금이라도 더 말하려고 난리가 납니다. 결국 그러한 설익은 생각과 말들이 서로 나와서 부딪히다보면 결국 마음도 상하고 원래 의도했던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게 되고, 결국 자신들이 무슨 대화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게 되는 것이지요. 그냥 떠들어대는 것일 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드러나는 성모님의 덕목은 ‘간직함과 되새김’입니다. 성모님은 잘 간직할 줄 아셨고, 나아가 그것을 되새길 줄도 아셨습니다. 성모님의 그 덕목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것이지요. 성모님의 모범을 본받아 우리도 많은 자리에서 간직하고 되새기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상대의 어두움마저도 내 안의 성찰을 거쳐서 타산지석으로 작용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을 알려주는 분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요한 1,18) 보여주면 보아야 하는데 보질 못합니다. 왜냐하면 받아들일 눈이 없기 때문입니다. 눈이 없어서 없는 게 아니라 눈을 감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시는 사람에게 조심하라고 한다지만 그가 들을 귀가 없어서 듣지 않는 게 아닙니다. 그는 듣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는 눈 앞의 알콜이 너무나 향긋하고 좋은 것이지요. 그래서 주변에서 그를 걱정하는 사랑과 애정 따위는 그 알콜의 향긋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것이고 그 사랑과 애정과 관심을 누릴 줄 모르는 것입니다. 결국 그는 자신이 사랑한 알콜에게서 그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라는 것은 그닥 좋은 모양새가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느님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전한 가르침은 그래서 늘 ‘새로운 계명’, 한 번도 포장지를 뜯지 않은 계명으로 남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주 보이기 쉽게 드러내셨고, 우리 가운데 직접 사셨으며 우리처럼 말씀하시고 밥을 먹고 걸어 다니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분을 보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었지만 결국 그분을 못박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가르침이라는 것은 지금의 자신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지요. 지금도 예수님은 교회를 통해서 같은 말을 하시고 계시지만 지금의 세상은 그런 예수님은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지금 세상은 그저 마음을 조금 편하게 하는 예수님을 원하지, 지금의 예수님처럼 늘 우리를 조금은 불편하게 해서 우리가 각성하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게끔 도와주는 예수님은 성가시다고 생각합니다. 시험 때문에, 대학 때문에, 직장 때문에 바쁜 가운데 예수님은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버릇처럼 하는 말, 하느님을 알고 싶다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알고 싶어하지 않습...

그리스도의 적

사람들은 마치 ‘그리스도의 적’이라고 하면 그리스도가 탄생한 듯이 어느 부유한 집안의 못된 아기가 태어나서 사탄 그 자체가 되어 그리스도에 맞서는 무슨 판타지 소설 같은 것을 연상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적이라는 것은 그런 영화 속의 이미지 같은 것이 아니라 보다 구체적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적은 그리스도가 이루시려는 것에 맞서는 모든 존재를 말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무엇을 이루시려고 하셨을까요? 여러가지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려고 하셨고, 사랑을 이루려고 하셨고, 모두가 하느님 안에서 하나되고 진정으로 서로를 아끼고 행복해하는 것을 궁극적으로 이루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적은 이 모든 것에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유다 사도가 예수님 앞에 물은 것처럼 ‘저는 아니겠지요?’라고 묻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생각처럼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성전 안에 머물러 있다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사 생활을 꼬박꼬박 챙겨 한다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전을 찾아오는 이유를 알아야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성사 생활을 한다는 것의 본질적인 의미, 즉 신앙을 실제로 사는 이들이 되어야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그리스도가 원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때로는 그리스도의 뜻을 어긋나기까지 나의 뜻을 원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더러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이 가난하고 궁핍하게 살라고 한 게 아닙니다. 그걸 흉내내라고 단식이나 몇 번 하라고 한 게 아닙니다. 우리에게 기본적인 것이 있을 때에 가난한 이를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재의 수요일과 성금요일의 단식은 철두철미하게 지키려고 하면서 그보다 더 소중한 자선과 사랑의 행업은 쉽게 잊어버리고 맙니다. 교회 내에서 성인 행새를 하는 그리스도의 적들이 존재하니 사...

아기의 영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루카2,40) 아이는 혼자 크지 않습니다. 부모님들이 아이를 키웁니다. 부모가 없으면 밥도 혼자 먹지 못하고, 옷도 혼자 챙겨입지 못합니다. 그리고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여러 정보들도 부모를 통해 얻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면 학교에 갑니다. 그래서 정신이 큽니다. 여러가지 사회에서 필요한 기초적인 정보를 학습하고 지식을 넓혀 나갑니다. 기본적인 사회 구성원이 될 준비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성인이 되고 나면 부모는 자식을 다 키웠다고 생각합니다. 일단은 키운 건 맞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가 남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영’입니다. 부모의 책임 가운데에는 그의 육신이 존재하고 그의 정신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미성숙한 영도 부모의 책임에 속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그의 영이 자라도록 힘쓸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적지 않은 이들이 실패를 합니다. 가난한 이들은 가난한 대로 실패를 하고, 부유한 이들은 부유한 대로 실패를 합니다. 세상에서는 ‘인성’이라는 표현을 곧잘 씁니다. 내면의 인간적 성숙도를 의미하는 것이지요. 그리스도교에서는 ‘영’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지혜’와 ‘하느님의 총애’가 그 역할을 하는 부분이지요. 부모는 아이의 영을 키워내어야 합니다. 그 영이 ‘사랑, 진실, 정의, 관용, 용서, 인내’와 같은 것에 익숙해지도록 키워야 합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버려 둔다든지, 혹은 그와는 정반대로 지나치게 모든 것을 이루어주기만 하면서 결국 아이의 영을 망쳐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아이는 그 공허감을 엉뚱한 데에서 채우려고 합니다. 반대로 모든 것을 이루어주는 부모 아래서 자란 아이는 세상이 모두 자기 발 밑에 있는 줄로만 착각합니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전자의 문제가 많고, 좀 사는 나라에서는 후자의 문제가 많습니다. 물론 양자가 늘 함께 존재하지요. 세상에 그 어느 부모도 완벽한 ...

예약 주문

이번 휴가를 갔다오고 나면 이제 마지막 여행만이 남겠군요. 바로 복귀입니다. 그때면 제가 가진 것을 처분하고 가야겠지요. 사실 벌써부터 예약 주문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 신부님, 지금 입고 계시는 옷 그거 나중에 한국 가실때 저 주세요. - 아! 그거 내가 부탁하려고 한건데!!! 그럼 입고 계시는 바지 저 주세요. 며칠 전 교사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나온 말입니다. 아직 한참을 더 같이 살아야 할 사람에게서 저들 받을 옷 예약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재미있어서 웃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내가 사는 삶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좀 섭섭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가진 것이 아직 탐이 나는 것이 많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주고 가야지요. 그렇게 갖고 싶어하는데 기꺼이 주고 갈 생각입니다. 아예 지금 달라는 대로 줘버릴까 생각도 합니다. 옷가지야 있다가도 없는 것이고 없다가도 생기는 것이니까요. 허물처럼 벗어버리고 떠날 인생입니다. 그러니 가진 동안 잘 보살피고 쓰다가 떠날 날이면 미련 없이 내려 놓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으니 하느님은 이미 당신의 영혼을 예약 주문 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훗날 하느님에게 돌려드릴 영혼을 함부로 다루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셔야 할 것입니다.

의전행사

중요한 분이 오는 중요한 날에는 늘 의례히 하는 행사가 있습니다. 의전행사라고 하지요. 정말 열심히들 준비합니다. 하지만 그 소위 ‘중요한 분’은 그런 행사를 준비하는 민초들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하게 보이기만 할 뿐입니다. 의전행사는 준비하지 않으면 경을 치는 것이고 준비한다고 해서 별다른 기쁨도 없는 것입니다. 그저 늘 하던 것이라 할 뿐이지요. 상대의 존엄함에 맞게 격식을 갖춘다는 생각은 바람직하고 좋은 것이지만, 과연 그 격식이라는 것이 진정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 받지만 그 영광 안에는 실속이 하나도 없습니다. 상대를 사랑하지 않는 껍데기 영광일 뿐이지요. 아니, 오히려 반대로 속으로는 그를 증오하고 있는데 겉으로 생글생글 웃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참된 영광은 오직 하느님께만 돌려 드려야 하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돌아가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참된 제자들은 너무나도 겸손해서 그들은 물 한 잔에도 감동할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들이 만든 격식, 의전행사는 실은 세상의 우둔한 권력들에게 바치는 찬송가에 불과한 셈이지요. 다정한 미소와 따스한 차 한 잔,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이야말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의 진정한 영광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권력에 속한 이들에게 이런 종류의 영광은 아무런 가치를 갖지 못하는 셈입니다. 무슨 중요한 날이 되어 행사를 준비하면서 스스로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방문하는 이 중요한 사람을 내가 정말 사랑하는가 아닌가를 말이지요. 만일 마음 속에 그 어떤 종류의 사랑도 없다면 공연한 짓을 하고 있는 셈이 됩니다. 하지만 하지 않으면 그가 화를 낼 것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지요. 그만큼 허망하고 의미없는 짓도 참으로 드물 것입니다.

그 시절의 유혹거리들

어린 시절 누군가가 정말 멋진 장난감을 들고 오면 어린이였던 우리들은 한 번 만져보고 싶은 그 유혹을 저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어른이 되고 백화점에 가서 멋진 장난감을 만나더라도 어린 시절처럼 격한 유혹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어른의 시절에는 어른의 유혹거리가 있게 마련이지요. 이 깨달음을 올바로 거쳐낸 사람은 ‘유혹’의 특징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셈이고 세상의 유혹에 맞서서 보다 더 용기있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돈, 명예, 권력과 같은 종류의 것들에서 무방비 상태로 유혹에 걸려들지는 않는 셈입니다. 물론 그 수준에 이르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느 순간 극복했다고 생각했던 대상에 이미 마음이 사로잡혀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것이 보통이지요. 인기 따위에는 연연하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어느 순간엔가 사람들의 의견에 휘둘리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권력의 욕구에 사로잡히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어느 순간엔가 누군가에게 명령을 받는 것을 내적으로 거부하고 있으며, 돈에서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이에 갖고 싶은 물건이 생겨버리고 하는 식입니다. 하지만 꾸준히 마음공부에 힘을 쓴다면, 그 정도가 갈수록 덜해지는 스스로를 느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어른이 아이적의 것들을 극복하듯이 스스로 성장해 있는 자신을 알게 되지요. 그러니 용기를 잃지 말고 앞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