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성인 견진반 고해를 주었습니다. 어른들의 잘못은 대체로 ‘분노’와 ‘다툼’에 관한 것이 많습니다. 아이들에게서는 주로 ‘거짓말’이나 소소한 잘못들이 드러나지요.
어른들은 왜 다툴까요? 서로의 주관이 뚜렷해서 그렇습니다.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다툼이 적은 이유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시기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어른들은 저마다 똑똑하고 자기가 가진 생각이 굳어져 있어서 다른 이들과 ‘대화’를 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충돌이 잦은 편입니다.
과연 우리는 그렇게 튼튼한 생각의 바탕을 마련하고 있는 걸까요? 그래서 내가 가진 생각들이 모두 참이고 옳아서 다른 이들이 내 의견에 따라야만 하는 걸까요?
여기서 ‘자존심’이라는 문제도 개입됩니다. 때로는 나 자신이 너무나 소중해서 설령 ‘나 자신’에게서 오류가 있어도 그걸 인정하지 않고 묻어버리려 하고 그 탓을 남에게 돌리려고 하지요. 사실 참으로 복잡다난한 문제입니다.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그 안에는 같은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자기애’
나를 향한 사랑은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이 집착이 되기 시작할 때에는 모든 곳에서 문제가 일어납니다. 나 자신을 향한 집착은 하느님과 이웃과의 모든 관계를 파괴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전 인류 가운데 가장 완벽하신 인간이셨지만 하느님 앞에 당신의 의견을 내려 놓으셨습니다. 심지어는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지요. 그래서 가장 높은 영광을 입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신앙이지요.
하지만 우리들은 여전히 부족하고 나약한 존재들입니다. 아내와 다퉈야 하고, 자녀들과 다퉈야 하고, 부모님과 다퉈야 하고, 이웃들과 친구들과 다퉈야 하지요. 그리고 그러다보면 조금씩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강하지 못해서 쓰러지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쓰러졌을 때에 배우지 못한다면 다음번에는 더 크게 쓰러지게 됩니다.
어른들은 왜 다툴까요? 서로의 주관이 뚜렷해서 그렇습니다.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다툼이 적은 이유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시기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어른들은 저마다 똑똑하고 자기가 가진 생각이 굳어져 있어서 다른 이들과 ‘대화’를 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충돌이 잦은 편입니다.
과연 우리는 그렇게 튼튼한 생각의 바탕을 마련하고 있는 걸까요? 그래서 내가 가진 생각들이 모두 참이고 옳아서 다른 이들이 내 의견에 따라야만 하는 걸까요?
여기서 ‘자존심’이라는 문제도 개입됩니다. 때로는 나 자신이 너무나 소중해서 설령 ‘나 자신’에게서 오류가 있어도 그걸 인정하지 않고 묻어버리려 하고 그 탓을 남에게 돌리려고 하지요. 사실 참으로 복잡다난한 문제입니다.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그 안에는 같은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자기애’
나를 향한 사랑은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이 집착이 되기 시작할 때에는 모든 곳에서 문제가 일어납니다. 나 자신을 향한 집착은 하느님과 이웃과의 모든 관계를 파괴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전 인류 가운데 가장 완벽하신 인간이셨지만 하느님 앞에 당신의 의견을 내려 놓으셨습니다. 심지어는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지요. 그래서 가장 높은 영광을 입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신앙이지요.
하지만 우리들은 여전히 부족하고 나약한 존재들입니다. 아내와 다퉈야 하고, 자녀들과 다퉈야 하고, 부모님과 다퉈야 하고, 이웃들과 친구들과 다퉈야 하지요. 그리고 그러다보면 조금씩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강하지 못해서 쓰러지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쓰러졌을 때에 배우지 못한다면 다음번에는 더 크게 쓰러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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