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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와 독수리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루카 17,37)

거꾸로 이야기하면 독수리고 모여든 곳에는 시체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이런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저마다 욕구가 존재하고 그 욕구를 향해서 움직여 나아갑니다. 연예인들에게 열광하는 중학생들이 모인 곳에는 그에 관한 이슈가 있게 마련입니다. 반대로 아줌마들이 모이면 자녀나 남편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오지요. 시집 안 간 처자들이 모이면 자신을 꾸미는 이야기나 새로 나온 의류나 신발, 가방 등등의 이야기들이 오갑니다. 남자들은 모이면 이쁜 여자 이야기나 군대 이야기를 하지요.

세상의 관심사가 모여드는 곳이면 거기에는 먹을 것이 있다는 말이 됩니다. 세상은 돈이 되지 않거나 화제거리가 되지 않는 곳에는 모여들지 않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수다’와 ‘감동’마저도 팔아먹는 시대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연예인들이 노는 걸 구경하고, 연예인들이 눈물 흘리는 걸 구경하는 시대이지요. 과연 이러한 내면의 자극이 극에 달하고 나면 과연 그 다음에는 무엇이 그 공격 대상이 될지 궁금합니다. 일본이나 미국에서 그 예를 발견할 수 있겠지요. 그들의 텔레비전에서 방송되는 것을 잘 살펴보면 인간의 욕구가 극에 달하면 ‘법적 허용 범위’ 안에서 어디까지 나갈 수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우리 나라에서 불과 십수년 전에 어느 드라마에서 ‘키스’ 장면이 나와서 화제가 된 것이 엇그제 같은데 이제는 그런 걸로는 코웃음도 치지 않는 정도이니 어디를 향해서 치닫고 있는지 알만하지요.

독수리는 시체를 먹고 삽니다. 독수리가 모여서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서로의 삶의 무게에 대해 진중한 이야기를 나눌리가 없습니다. 독수리는 시체가 생기면 거기에 모여들어 고개를 들이밀고 썩은 내장을 파먹습니다.

죽은 것을 먹고 사는 존재들, 그것이 이 성경의 구절에서 말하는 독수리들입니다. 죽음의 냄새가 나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여 듭니다. 과연 그 독수리들은 지금 어디에 모여 있는 것일까요? 과연 그 독수리들은 어떤 시체를 먹으려 들고 있는 걸까요?

그렇다면 최종적으로 다음의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과연 ’나’는 그 독수리들로부터 자유로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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