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의 여러가지 실제적인 현실에 대해서 설명하다가 후배 신부님 한 명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형, 저는요. 가능하면 푸근하게 살고 싶어요. 문제 없이 말예요. 모두가 서로 친구처럼 살았으면 좋겠어요.”
참 좋은 생각이지요. 서로 푸근하게 친하게 지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문제는 생각처럼 될 수가 없다는 데에 있지요. 우리가 막연히 추상적으로 모든 사람들을 좋게 대한다고 하다가는 어느새인가 예수님의 표현대로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뿌리고 가버리니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맡은 양떼들을 책임감 있게 돌보아야 하는 것이지요. 잃은 양들을 찾고 우리의 양들에게 꾸준히 먹이를 먹여 건강하게 만들어 놓아야 하는 것이지요.
결국 달리 표현하면 ‘난 그냥 문제없이 편하게 지내고 싶어요.’라는 원의를 지니고 있는 것인데 우리가 사는 이 지상에서의 삶은 그것이 목적이 아니기에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이 땅에서의 삶에서 열매를 맺도록 우리를 불러 세우시고 파견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자리에서 ‘달란트’를 이용해서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을 단순히 여가 생활의 하나 정도로 생각했다면 큰 착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도 더욱 치열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 안에서의 일만 신경쓰면 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내부적인 요소들도 소홀히 할 수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내부적인 것만 신경쓰고 살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어느 어머니가 자녀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치면서 설거지도 하지 않고, 빨래도 하지 않고, 요리도 하지 않는다면 그 어머니는 자신의 신앙을 엉뚱하게 오해하고 있는 것이지요.
푸근한 세상은 올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의 사명을 마무리했을 때에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그때까지는 열심히 달음질을 하시기 바랍니다.
“형, 저는요. 가능하면 푸근하게 살고 싶어요. 문제 없이 말예요. 모두가 서로 친구처럼 살았으면 좋겠어요.”
참 좋은 생각이지요. 서로 푸근하게 친하게 지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문제는 생각처럼 될 수가 없다는 데에 있지요. 우리가 막연히 추상적으로 모든 사람들을 좋게 대한다고 하다가는 어느새인가 예수님의 표현대로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뿌리고 가버리니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맡은 양떼들을 책임감 있게 돌보아야 하는 것이지요. 잃은 양들을 찾고 우리의 양들에게 꾸준히 먹이를 먹여 건강하게 만들어 놓아야 하는 것이지요.
결국 달리 표현하면 ‘난 그냥 문제없이 편하게 지내고 싶어요.’라는 원의를 지니고 있는 것인데 우리가 사는 이 지상에서의 삶은 그것이 목적이 아니기에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이 땅에서의 삶에서 열매를 맺도록 우리를 불러 세우시고 파견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자리에서 ‘달란트’를 이용해서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을 단순히 여가 생활의 하나 정도로 생각했다면 큰 착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도 더욱 치열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 안에서의 일만 신경쓰면 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내부적인 요소들도 소홀히 할 수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내부적인 것만 신경쓰고 살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어느 어머니가 자녀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치면서 설거지도 하지 않고, 빨래도 하지 않고, 요리도 하지 않는다면 그 어머니는 자신의 신앙을 엉뚱하게 오해하고 있는 것이지요.
푸근한 세상은 올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의 사명을 마무리했을 때에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그때까지는 열심히 달음질을 하시기 바랍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