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루카14,14)
우리는 선한 일을 할 때조차 선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은근 뭔가를 바라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내 친구에게 잘 해 줄 때에는 그 친구에게 다시 되받을 무언가를 이미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이들에게 잘 해 줄 때조차 우리는 그 사실을 널리 공포해서 사람들로부터 ‘착하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보상 받을 것을 기대합니다. 우리는 생각만큼 선하지 않습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분명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돌려줄 수 없는 이들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아주 쉽고도 명료한 가르침을 주시지요. 이로써 ‘자선’에 대한 예수님의 기본적인 가르침을 얻은 셈입니다.
우리는 돌려줄 수 없는 이들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가 아예 뭔가를 돌려받을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신이 한 선업에 스스로 나팔을 부는 것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은 셈이 됩니다.
죽은 이를 위한 기도가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우리에게 전혀 돌려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연옥 영혼들을 위한 기도가 중요한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연옥 영혼들을 위한 기도는 더할나위 없는 교회의 보물입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할 때조차 선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은근 뭔가를 바라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내 친구에게 잘 해 줄 때에는 그 친구에게 다시 되받을 무언가를 이미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이들에게 잘 해 줄 때조차 우리는 그 사실을 널리 공포해서 사람들로부터 ‘착하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보상 받을 것을 기대합니다. 우리는 생각만큼 선하지 않습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분명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돌려줄 수 없는 이들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아주 쉽고도 명료한 가르침을 주시지요. 이로써 ‘자선’에 대한 예수님의 기본적인 가르침을 얻은 셈입니다.
우리는 돌려줄 수 없는 이들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가 아예 뭔가를 돌려받을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신이 한 선업에 스스로 나팔을 부는 것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은 셈이 됩니다.
죽은 이를 위한 기도가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우리에게 전혀 돌려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연옥 영혼들을 위한 기도가 중요한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연옥 영혼들을 위한 기도는 더할나위 없는 교회의 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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