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루카 15.10)
하느님 앞에 얼마나 많은 일을 해야지 하느님이 마음에 들어 하실까요? 우리는 세상적인 결과물을 내어 놓는 데에 익숙해서 하느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바를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인전을 읽으면 성인들의 극단적인 금욕생활이 눈에 들어오면서 우리도 저 정도는 해야지 하늘 나라에 합당하지 않나 하고 생각하기 일쑤이지요. 그리고는 적어도 묵주기도를 20단씩, 평일미사를 꼬박꼬박, 주일은 당연한 거고, 성사생활도 가능하면 자주 등등의 요소들로 우리의 불안한 양심을 안심시키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태생 소경에게 실로암 연못으로 가서 씻으라고 명령하셨을 때에 그 태생 소경이 해야 했던 일은 연못으로 가서 씻는 것이었습니다. 광장에서 발가벗고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게 아니었던 것입니다. 정말 간단하고도 쉬운, 그래서 믿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일상의 과업들은 엄청난 것들이 아닙니다. 엄청난 일들은 엄청난 이들에게, 즉, 그 엄청난 일을 수행하도록 준비된 이들에게 맡기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우리가 할 만한 일들을 맡기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할 만한 일들 가운데에서 최고봉은… 놀라지 마십시오. 바로 우리 자신의 의지의 변화입니다.
단 1초도 안되는 시간에도 일어날 수 있는 이 기적은 바로 우리 각자가 열쇠를 쥐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이를 ‘회개’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로 방향을 돌이킬 수 있습니다. 이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게 아닙니다. 순간의 시간에 일어나는 일이지요.
일단 우리가 이렇게 변화하고 나면 다음으로 과제들이 주어집니다. 바로 나의 이웃들이 나와 같은 체험을 하게 도와주는 것이지요. 하느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들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어쩌면 벌써 많은 분들이 너무나 쉬워서 말도 안된다고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이토록 간단한 것이라서 사람들은 이를 이루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전히 수많은 율법적 의무를 어깨에 짊어 지고도 여전히 하느님이 아닌 자기 자신을 추구하는 것이지요.
심지어는 자신들이 뭘 하고 있는지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의로움을 스스로 굳게 믿고 남들을 심판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자기가 전혀 죄인이 아니라고 느끼는 것이지요. 너무나 윤리적인 바탕 위에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처리하는지라 스스로의 ‘죄스러움’을 전혀 인지하지도 못하는 셈입니다.
보지 못하고, 보지도 않으려는 이들은 정말 답이 없는 셈입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행동을 취하게 됩니다.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루카 15,1-2)
하느님 앞에 얼마나 많은 일을 해야지 하느님이 마음에 들어 하실까요? 우리는 세상적인 결과물을 내어 놓는 데에 익숙해서 하느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바를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인전을 읽으면 성인들의 극단적인 금욕생활이 눈에 들어오면서 우리도 저 정도는 해야지 하늘 나라에 합당하지 않나 하고 생각하기 일쑤이지요. 그리고는 적어도 묵주기도를 20단씩, 평일미사를 꼬박꼬박, 주일은 당연한 거고, 성사생활도 가능하면 자주 등등의 요소들로 우리의 불안한 양심을 안심시키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태생 소경에게 실로암 연못으로 가서 씻으라고 명령하셨을 때에 그 태생 소경이 해야 했던 일은 연못으로 가서 씻는 것이었습니다. 광장에서 발가벗고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게 아니었던 것입니다. 정말 간단하고도 쉬운, 그래서 믿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일상의 과업들은 엄청난 것들이 아닙니다. 엄청난 일들은 엄청난 이들에게, 즉, 그 엄청난 일을 수행하도록 준비된 이들에게 맡기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우리가 할 만한 일들을 맡기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할 만한 일들 가운데에서 최고봉은… 놀라지 마십시오. 바로 우리 자신의 의지의 변화입니다.
단 1초도 안되는 시간에도 일어날 수 있는 이 기적은 바로 우리 각자가 열쇠를 쥐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이를 ‘회개’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로 방향을 돌이킬 수 있습니다. 이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게 아닙니다. 순간의 시간에 일어나는 일이지요.
일단 우리가 이렇게 변화하고 나면 다음으로 과제들이 주어집니다. 바로 나의 이웃들이 나와 같은 체험을 하게 도와주는 것이지요. 하느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들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어쩌면 벌써 많은 분들이 너무나 쉬워서 말도 안된다고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이토록 간단한 것이라서 사람들은 이를 이루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전히 수많은 율법적 의무를 어깨에 짊어 지고도 여전히 하느님이 아닌 자기 자신을 추구하는 것이지요.
심지어는 자신들이 뭘 하고 있는지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의로움을 스스로 굳게 믿고 남들을 심판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자기가 전혀 죄인이 아니라고 느끼는 것이지요. 너무나 윤리적인 바탕 위에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처리하는지라 스스로의 ‘죄스러움’을 전혀 인지하지도 못하는 셈입니다.
보지 못하고, 보지도 않으려는 이들은 정말 답이 없는 셈입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행동을 취하게 됩니다.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루카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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