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죄'라는 것을 없애고 싶어합니다. 사실 사람들이 신앙생활에서 적지 않은 부담을 가지는 것도 바로 이 '죄'리는 주제 때문이기도 합니다. 특히나 가톨릭은 '고해성사'라는 것이 있어서 다른 종교에 있던 사람들이 다가오는 데에 부담을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현대는 여러가지 수단으로 죄라는 것이 없다는 듯이 살아갑니다.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에 그건 사회의 문제이고, 환경의 문제이고, 심리의 문제이기에 결국 그 어떤 죄도 전가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는 성인에게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납니다. 특히나 심리라는 것은 잘못 사용하게 되면 우리 스스로 무언가를 한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영향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었다는 안정감을 얻고자 하는 수단으로 변질되게 됩니다. 한 마디로 내 탓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짚어줍니다. 그건 바로 우리의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지을 수도 있고 죄를 짓지 않을 수도 있는 선택을 부여받은 이들입니다. 그 영역이 바로 우리의 영혼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자유가 있고 우리는 그 영혼의 자유를 바탕으로 선을 행할 수도 악을 행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행복과 불행의 갈림길이 주어지게 됩니다. 행복한 이들은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이들이고, 생명을 선택하는 이들입니다. 반대로 불행한 이들은 주님의 가르침을 저버리는 이들이고, 죽음을 선택하는 이들입니다. 이 근본 방향은 절대로 변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담배에 중독된 사람이 담배를 간절히 바라면서 다른 사람에게도 담배를 권하고 담배 피우는 것을 찬양하는 것처럼 악에 물든 사람들은 악의 방향을 좋은 것으로 꾸밀 뿐입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죽음이 생명을 이겨본 적은 없고 사람은 스스로 선택한 것에 최종적으로 책임을 져야만 합니다.
사실 이 방향을 올바로 아는 것을 두고 성경은 '지혜'라고 부릅니다. 세상의 영리함은 사실 성경적 지혜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저 시험을 잘 치르고 기억력이 좋은 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주변에 얼마든지 두고 있습니다. 좋은 성적으로 좋은 직업을 얻은 뒤에 사람을 속이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치인들을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똑똑한 사람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 지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세상 우두머리들은 아무도 그 지혜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깨달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마지막 목적지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세상에서 볼품 없고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할 수 있지만 그의 지혜는 그를 마침내 바른 길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지혜이고 철부지들에게 드러난 하늘 나라의 신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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