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난 바지 주머니에 사탕을 넣고 다니는 친구는 멍청한 친구입니다. 그 구멍으로 사탕이 줄줄 새어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혼에도 구멍이 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그 중에 몇 가지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1. 보이기 위한 선행
우리가 선행을 하고 나서는 곧잘 그 선행을 광고하고 다니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할 때에 우리는 영혼에 구멍을 내게 되는 셈입니다. 우리의 그 허영이 영혼에 구멍을 내고 나면 선행을 통해서 내가 얻게 된 좋은 것들이 영혼에 머무르지 않고 모두 빠져나가 버립니다. 심한 경우에는 그 허영의 구멍으로 들어와서는 안될 것도 들어오게 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유혹에 너무나도 쉽게 빠져듭니다. 자신이 한 작은 선한 일이 충분히 자신의 좋은 습관으로 굳어지기도 전에 그것을 모조리 다 까발려 버립니다. 결국 그가 한 선행은 온데간데 없고 그는 다른 사람의 인정과 칭찬을 얻고자 한 것 뿐입니다.
2. 드러내는 기도
기도를 하는데 누군가 들어와서 보는 것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사람들이 보란듯이 의도적으로 공공연히 자신의 신심행위를 드러내는 것은 또한 영혼에 구멍을 뚫고는 그 영혼에 성스러움을 채우려는 어리석은 시도입니다. 이런 기도는 하느님에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사탄이 즐겨 듣습니다. 그리고 그의 허영을 채워줄 다른 요소들로 그들을 이끌어갑니다. 이런 이들은 곧잘 자신이 성녀라도 되는 듯이 나서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성스러움을 알리고자 애를 쓰고 곧잘 예언자의 흉내를 내어서 사람들을 꼬시려고 애를 씁니다. 사실 이런 이들은 거룩한 이들이 아니라 고약한 이들입니다. 영적으로 굉장히 교만하고 독선과 아집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헌데 성당에서는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 헷갈려 합니다. 왜냐하면 외적으로는 성당에서 추구해야 할 거룩한 행동을 너무나 열심히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식별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이들이 요란한 깡통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립니다. 왜냐하면 참으로 기도하는 이에게서 보이는 평화와 기쁨이 이들에게는 없고, 오히려 교만과 허영, 시기와 탐욕, 집착과 아집이 너무나 쉽게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3. 위선적인 단식
사순 같은 시기가 되면 꼭 등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번 사순 기간 동안에는 술을 끊기로 했다거나 담배를 끊기로 했다는 식의 과시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더 재미난 것은 이들이 부활과 동시에 그것들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부활 성야 당일에 보란듯이 술을 잔뜩 마시기 시작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단식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이들입니다.
단식이라는 것은 현세적인 정당한 것을 영적인 목적을 위해서 기꺼이 희생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원래 끊어야 하는 것을 끊으면서 그것조차 다른 이들을 위한 과시의 수단으로 삼는 이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입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단식하는 이들은 오직 하느님만이 알아주시는 단식을 하고 또 그것에 대해서 다른 이들의 인정을 전혀 받지 못해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정반대의 것도 단식이 됩니다. 예를 들어서 항상 고요 속에서 머물러 있는 사람이 하느님을 위해서 일부러 사람들과 함께 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 그에게는 오히려 단식의 행위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 내적인 의미는 오직 하느님만이 알아 주십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는 모든 자선과 기도와 단식은 하느님 앞에 내어바치는 영적인 예물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 앞에 보란듯이 하는 행위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또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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