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종종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짐승이라고 표현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1장에서 그에 상응하는 부분이 등장합니다. 베드로에게 주어진 환시 속에서 그의 앞에 수많은 짐승들이 등장을 합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자신이 지금까지 배워온 율법의 가르침에 따라 그것을 '부정한' 것으로 식별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은 사실 세상의 창조의 모든 과정을 보시니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당연히 그분이 만드신 모든 짐승들도 그 자체로 깨끗하고 좋은 것들입니다. 그들에게 유일하게 부족한 것은 하느님을 아는 것이고 바로 그것을 위해서 존재하는 이들이 우리 자신들, 즉 신앙인들입니다.
신앙인들은 그래서 '선교'를 고유한 사명으로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도 선교에 대한 명령이었지요. 우리는 할 만해서 선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선교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인이라는 고유한 이름을 달고 있다면 말이지요. 우리는 다만 하느님과 그들 사이에 징검다리일 뿐입니다. 우리가 감히 그 연결을 끊어버릴 자격은 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구원하시고자 하는 이들에게 다가가 신앙을 전해야 합니다.
짐승이 짐승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그들의 탓이 아니라 그 중간 역할을 하지 않는 우리 신앙인들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듣지 못한 것을 누가 그들에게 전해 주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들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몫을 해내지 않고 머물러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탓으로 회개하지 못한 그들에 대한 책임까지도 지게 될 것입니다.
칼이 쳐들어오는 것을 보고도 파수꾼이 나팔을 불지 않아, 백성이 경고를 받지 못하였는데 칼이 쳐들어와서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을 잡아간다면, 그는 자기 죄 때문에 잡혀가는 것이지만, 그가 죽은 책임은 내가 파수꾼에게 묻겠다. (에제 33,6)
여러분 가운데 그 누구의 멸망에 대해서도 나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것을,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엄숙히 선언합니다. 내가 하느님의 모든 뜻을 무엇 하나 빼놓지 않고 여러분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20,26-27)
내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 (1코린 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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