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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 딸이 얻어맞다 2026년 7월 28일 화요일 [(녹) 연중 제17주간 화요일]




처녀 딸 내 백성이라는 말은 아직 세상을 알지 못하던 순수한 영혼을 지닌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그런 이들이 세속이라는 것에 상처를 입고 있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탐욕에 사로잡히는 것을 얻어맞는다고 표현하고 세상의 속됨에 상처입어 가는 것을 참혹한 상처를 입는다고 표현을 합니다.


들이라는 곳은 세상을 의미합니다. 아직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하지만 좋은 양심을 가진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곳은 이미 영적 폭력이 난무합니다. 무신론의 사상이 팽배해 있고 사람들은 교회를 단순히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싫어하기 시작합니다. 그런 모습을 칼에 맞아 죽은 자들로 표현합니다. 즉 영혼에 생기가 돌 수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읍 안은 외부에서 보호를 받아야 하는 곳으로 바로 교회 안을 의미합니다. 헌데 그 안에는 '굶주림'과 '병'이 가득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올바로 전하는 이들을 찾아보기 힘들고 나아가 이상한 형태의 신앙이 병처럼 사람들에게 번져 나갑니다.


예언자와 사제라는 특정 직분을 콕 집어 이야기합니다. 만일 이 이야기가 단순히 역사 중에 있는 한 나라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면 이 두 직분 외에도 많은 직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임금이나 장수라고 표현했겠지요. 하지만 예레미야서는 영적인 현실을 다루는 책이고 따라서 여기서 언급되는 직분은 예언자와 사제입니다. 즉, 자신의 백성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거룩한 제사를 드려야 하는 이들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헌데 그들이 '어찌할 바를 모른다'고 표현합니다. 이는 지금의 우리 교회의 현실과도 비슷한 것으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직무를 지닌 사람들이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건물을 지으라고 하거나 인테리어를 바꾸라고 하면 적극적으로 임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면 도대체 뭘 해야 할지 모릅니다.


우리의 처녀 딸 이스라엘은 지금도 얻어맞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이 얻어맞고 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합니다. 그저 깨어있는 이들이 하느님 앞에 부르짖을 뿐입니다. 그것이 화답송의 내용입니다.


"저희 구원의 하느님, 당신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저희를 도우소서. 저희를 구하소서. 당신 이름 위하여 저희 죄를 용서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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