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은 필요를 찾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들의 필요에 적절히 부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군중은 예수님을 가지 말아 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느님의 뜻과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었습니다. 군중은 예수님을 이용하던 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들에게 있던 '불편'을 없애주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분의 사명이었습니다. 그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부수적으로 나머지 일들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사랑하셨고 그분의 나라가 퍼져 나갈 수 있는 기회라면 무엇이든지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그분은 사람들의 부탁을 거절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하셔야 하는 일을 합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서로의 필요를 찾을 뿐이고 서로의 이해관계가 어울리는 동안 한데 모여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런 그들 가운데에는 하느님의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하느님의 사람은 인간의 필요를 부수적인 요소로 봅니다. 그리고 핵심이고 본질을 전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리고 허락된 때가 지나고 나면 자신의 사명이 자신을 부르는 곳으로 나아갑니다.
한 가지 재미난 장면은 예수님의 꾸짖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온유하고 온화하고 정적인 분으로 착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다이나믹 하신 분이십니다. 성전에서 정화 사건도 그렇고 오늘 복음에서 사건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마귀들이 소리치는 것을 가만 두지 않으십니다. 헌데 마귀들은 정작 겉으로 보기에는 좋아 보이는 소리를 했습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도무지 틀린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같은 말이라도 누가 어떤 의도로 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말이 됩니다. 마귀들은 아무리 거룩한 말이라도 더러운 목적으로 합니다. 심지어는 누구를 칭송하는 것 같더라도 그것은 진정으로 그를 사랑하거나 그가 하는 일을 돕기 위함이 아니라 정반대로 그가 하는 일을 가로막고 방해하기 위한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꾸짖고 그들이 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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