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없이 산다는 것은 아무 걱정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저 나름의 걱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만 성경이 말하는 걱정은 '영적인 상태에 대한 염려'를 말합니다. 세속에 속한 이들은 모든 걱정을 하지만 단 하나 영혼의 처지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시온에 살면서도 그런 걱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심지어 성당을 다닌다면서도 스스로의 영혼의 처지에 대해서 염려하지 않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상아 침상과 안락의자가 뜻하는 것은 세속의 쾌락을 의미합니다. 영혼에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 남은 것은 '안락', '안정', '세속적 평화’뿐입니다. 이들은 지상에서의 행복을 추구합니다. 따라서 자연스레 더 많은 부와 명예, 권력을 추구하면서 세상 안에서 주어지는 기쁨과 쾌락에 도취되게 됩니다.
어린 양이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바로 우리 주님이 표상하는 바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교회에서는 예수님을 상징하기 위해서 어린양의 이미지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미사 안에서도 우리는 '보라 하느님의 어린 양'이라고 기도합니다. 어린양은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는 선하고 착한 이들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곧잘 세속 사람들에게 희생양이 되기 마련입니다. 세속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안락과 편의를 위해서 하느님의 자녀들을 괴롭히는 것이 일상입니다.
노래와 악기에 대한 이야기는 그들이 드리는 헛된 경신례를 의미합니다. 그들은 신앙인을 흉내내어 마치 거룩한 찬가라도 올리듯이 미사를 드리고 성사도 받지만, 실상 그들은 그들의 쾌락에 취해 도리어 하느님을 모욕하는 행위를 한다는 의미입니다. 마치 정치인이 선거 때가 되면 미사에 나와서 거짓 신자 흉내를 내는 것을 떠올려 보면 됩니다. 또 자신의 본질의 삶은 하느님을 전혀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도 적잖이 있습니다.
포도주와 향유는 세속의 사치와 쾌락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날이 갈수록 세상의 욕구에 사로잡혀가고 끝도 없이 벌어야 하고 번 것을 써야 하는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삶으로 물들어갑니다. 동시에 '요셉 집안이 망하는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에서 그들은 자신의 영혼과 나아가 교회의 현실이 무너져 가는 것에 대해서는 일도 관심 없습니다. 추석이면 장거리 여행을 갈 궁리는 하면서 하느님에게 찬미를 드리기 위해 작은 시간을 헌신하는 것도 아까워하는 이들에게 딱 들어맞는 말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최후의 선언이 주어집니다.
"이제 그들이 맨 먼저 사로잡혀 끌려가리니
비스듬히 누운 자들의 흥청거림도 끝장나고 말리라."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끝이 있고 더한 쾌락을 누릴수록 더한 고통과 괴로움이 기다릴 뿐입니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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