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은 마치 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민족, 백성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한계를 지닌 사람으로서 우리의 한계를 넘어선 것을 바라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같이 총알 속도만큼 빠르게 움직이는 지구 위에 살면서도 정작 그 움직임을 느끼지 못하고 더 나아가 천체가 움직인다는 것을 배워서 알고는 있지만 감지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 계획하시고 실행하시는 일도 우리에게는 너무나 벅찬 일이 됩니다.
하지만 정작 하느님은 한 민족을 옹기장이 손의 진흙처럼 주무르십니다. 필요없는 부분이 있으면 떼어내고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전에 없던 진흙에서 떼어와 더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하느님 손에 있는 이들의 운명입니다.
사람들은 이 지상에서 자신의 생애 동안 벌어지는 일을 '절대적인 것'으로 착각합니다. 하지만 그건 한계를 지닌 우리들의 착각일 뿐입니다. 하느님은 영원 속에서 일을 만들어 가십니다. 그래서 지금은 하찮게 보이는 것이 나중에는 어마어마하게 위대한 것이 될 수도 있고 나아가 지금은 대단해 보이는 것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경험도 하게 됩니다. 심지어 하느님은 세대를 거쳐 가면서 당신의 계획을 실행하시는 분이라 당신이 하시는 일은 우리의 감각에 들어오지도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하느님께 신실한 이들과 거짓된 이들이 나뉘게 됩니다. 결국 신앙이라는 것은 일시적인 외적 환경의 변화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이 영원 속에서 언제나 올바르게 실행하시는 하느님을 신뢰할 것인가 아닌가로 나뉘게 됩니다. 참으로 믿는다는 말은 언제나 하느님 앞에 희망을 두고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고 반대로 믿지 않는 사람은 결국 이 영원하신 하느님을 올바로 신뢰하지 못해서 조급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복음은 그것을 뚜렷하게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결국 최종적으로 분명한 한 가지 사건이 벌어지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선과 악의 분리입니다. 선을 근간에 두고 살아온 이들은 결국 하느님의 그릇에 담기게 되고 반대로 악을 실행한 이들은 불구덩이에 던져질 것입니다. 이는 뚜렷하고 확고한 진리입니다.
요행을 바라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마치 부장님을 1도 사랑하지 않는 부하직원이 인사의 이익을 바래서 그 앞에서 아양떨고 있는 모습처럼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마음 없이 그저 그분 앞에 눈속임을 하려는 신앙생활에 빠져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알량한 속임수에 넘어가실 분이 아닙니다. 그분 앞에 인내롭고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자녀로 거듭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저희 마음을 열어 주시어 당신 아드님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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