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람은 속일 수 있으니 신심이 없는 사람도 온갖 거룩한 척을 하면 신심이 있는 것처럼 보여 속는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의외로 성당에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나 우리 가톨릭은 외양으로 이루어지는 형식적 요소가 많기 때문에 누군가가 그 형식을 잘 꿰차고 그대로 실행하기만 하면 순진한 사람들은 그 사람이 열성이 대단한 것으로 착각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숨을 일도 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외견과 동시에 우리의 내면 속에서 일어나는 것을 똑바로 바라보십니다. 그래서 누가 진실한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을 하는지, 아니면 누가 마음으로 전혀 동의하지 않는 겉꾸민 행동을 하는지 잘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저마다의 행실대로 갚으십니다. 저마다 마음에 품은 생각대로 그리고 거기에서 빚어지는 행실대로 되갚아 주십니다. 거짓과 위선은 그에 상응하는 벌로, 진실함과 겸손은 그에 상응하는 상으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은 사실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은 속기 쉬운 존재라서 멀쩡한 사람을 두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고 반대로 악인을 두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자주 일어납니다. 특히나 신앙 안에서는 자주 발견되는 것이 성인들의 박해입니다. 성인들은 당대의 사람들에게는 흔히 기존의 틀을 깨는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사람들이 안락하게 지내는 가운데 성령의 흐름에 따라 실천하는 하느님의 사람은 그들 눈에 거슬려 보이기 마련입니다.
엘리야도 엘리사도 모두 당대의 박해를 받았습니다. 오히려 바알을 뒤쫓는 거짓 예언자들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은 오늘날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을 기분좋게 해 주는 사람을 찾지 자신들을 진리로 이끌어 주는 사람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저 싼 칭찬 몇 마디면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라고만 하면 그들은 만족합니다. 하지만 예언자는 하느님의 시선이 우선이었고 그분 앞에 올바르게 살아가도록 애써야 했고 다른 사람들을 그리로 초대해야 했습니다.
하느님은 숨은 일도 보십니다. 그분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 속을 파고들어 숨어 있는 생각을 드러내고 우리의 영혼을 발가벗기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훗날 그런 분 앞에서 셈을 올려 드려야 합니다.
화답송의 한 부분입니다.
당신 앞 피신처에 그들을 감추시어, 사람들의 음모에서 구해 내시고, 당신 거처 안에 숨기시어, 사나운 구설에서 구하시나이다. 주님께 충실한 모든 이들아, 주님을 사랑하여라. 주님은 진실한 이들은 지켜 주시나, 거만한 자에게는 호되게 갚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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