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의 예수님은 모순된 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한편으로 당신은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라고 하시면서 동시에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개가 어떻게 양립될 수 있는 것일까요?
쉰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쉽게 해석됩니다. 우리는 이 바쁜 현대 사회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에게 쉰다는 것은 말 그대로의 휴식, 육체적인 안식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다는 안식도 그저 단순한 '쉼'으로 해석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참으로 안식을 누린다는 것은 그러한 의미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안식, 평화, 안녕과 같은 말들은 바로 '영혼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평화롭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는 단순한 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질서 안에 머무르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빠가 그저 아무것도 안하고 쉬면 직장도 나가지 말아야 하고 자녀들에 대한 돌봄도 멈추어야 합니다. 그저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쉬고 있다고 표현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의 표현을 바탕으로 아빠가 쉰다는 것은 아빠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루어내면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평화를 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경우에는 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 내기 위한 충실한 배움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과거에는 '냉담자'라고 표현하다가 최근에는 그 표현이 좀 심하다 느껴졌는지 '쉬는 교우'라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사실 이는 잘못된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영혼은 쉬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하느님에게서 벗어나 더 큰 영적 어둠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탕자의 비유에서 둘째 아들이 더 나은 환경을 찾아서 아버지를 떠나갔지만 실제로는 더 큰 고생을 한 것과 비슷합니다.
참된 안식은 영혼의 평화로움에서 오는 것이고 그 영혼은 여러가지 시련과 훈련을 거쳐 나가면서 안식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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