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하는 사람이 떡밥을 뿌리는 것은 고기들이 모이게 하기 위함입니다. 만일 떡밥 자체의 가치에 매달려 있다면 낚시꾼은 아까워서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가 바라는 것은 물고기이기 때문에 기꺼이 떡밥을 희생합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하느님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마련하신 것으로 처음부터 기꺼이 선물된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세상의 것을 추수해서 당신에게 돌려드리기를 바라신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낚시꾼에게 떡밥과 같은 것입니다. 하느님이 진정으로 바라시는 것은 우리의 영혼입니다.
이 영혼이 돌아오게 하려고 하느님은 우리에게 여러가지 ‘시험’을 하십니다. 정말 우리의 마음이 그분께로 향해 있는지 아닌지를 시험하시려고 하느님은 우리를 부족하게 만들고 고난을 겪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그런 힘겨움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에게 매달려 있는지 아닌지 당신은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너희는 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인도하신 모든 길을 기억하여라. 그것은 너희를 낮추시고, 너희가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너희 마음속을 알아보시려고 너희를 시험하신 것이다.
다른 한 편, 우리는 구원을 찾아 이 여정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매 미사에서 이 구원이신 분을 마주합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음식으로,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오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먹고 마십니다. 이것으로 족합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음식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주려고 하실까요? 그저 입으로 씹어 삼기는 밀떡 조각이 전부인 것일까요? 아니면 달리 그 음식을 먹는 방법이 있는 것일까요? 마찬가지로 성경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분께서는 너희를 낮추시고 굶주리게 하신 다음, 너희도 모르고 너희 조상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게 해 주셨다. 그것은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은 단순한 빵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말씀이며 그분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체화(體化)하고 현현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성체와 성혈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믿음의 음식이며 우리가 그것을 받아 들임으로써 우리의 영혼에 작용하는 음식입니다.
오늘 강론이 난해할 것이라고 충분히 예상이 됩니다. 다만 우리에게 일상적으로 다가오는 이 거룩한 예식 속에서 선물되는 구원의 음식이 그저 무가치한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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