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기도는 저 높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시작합니다. 하늘이라는 곳은 영혼이 가장 드높이 올라갈 수 있는 영역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아버지는 바로 그 하늘에 계시는 분입니다.
높이 올라갈 수 있는 영역에는 한계가 없는 것처럼 거룩함에도, 성화에도 한계는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원한다면 얼마든지 성화에 더 높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드러나도록 세상 안에서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유일한 한계라면 우리의 죽음이 될 것입니다. 죽음의 순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성화의 노력은 그치게 될 테니까요.
우리가 거룩한 사람이 되면 이미 하느님의 나라는 이 땅에서 시작되게 됩니다. 아버지가 집안에서 신심에 따라 제 역할을 충실히 해 내면 식구들이 안정되게 살아갈 수 있고 그 집 안에는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지 않고 아버지가 진탕 술에 취해 식구들을 괴롭히면 바로 그 곳이 지옥이 되어 버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뜻을 올바로 묵상하고 그 뜻이 우리가 살아가는 곳에서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의 인기에 연연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이루도록 애써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그분의 뜻을 올바로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분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이를 '현세적 필요'로 해석하는데 물론 하느님은 새들도 먹이시는 분이시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용할 양식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하루하루의 은총입니다. 사람들은 단순히 눈 앞에 드러나지 않는다고 이 은총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이 없으면 우리가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것을 지니고 있어도 누리지 못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하느님의 용서입니다. 그리고 그 전제조건은 타인을 향한 우리의 용서입니다. 마치 작은 연못에서 물이 빠져나가야 그 빈공간에 새로운 물이 들어찰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용서를 얻을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용서하는 것은 그를 위해서라기보다 하느님 앞에 서 있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일상 안에서 끊임없는 유혹을 겪습니다. 이것을 이겨내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도움을 청합니다.
나아가 우리는 쓰러질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잘나고 아무리 경건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완벽한 사람은 예수님 말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넘어질 때가 있고 그리고 그 넘어진 순간에 구원이 필요합니다.
이 일련의 구도는 저 위의 하늘에서 시작해서 저 아래의 악의 구렁텅이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기도가 가지는 영적 구조이고 우리가 모든 가능한 순간에 이 기도를 주로 바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그저 빈 말을 되풀이하기보다 우리가 분명히 알고 있는 이 기도의 본질적 의미를 되새기면서 바치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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