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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구세주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 두 가지



1.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


수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사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일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을 자연스럽게 쫓아갑니다. 하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쫓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인간의 것을 초월한 존재를 따른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 존재는 진리와 선과 사랑의 존재입니다.


우리는 정말 진리를 사랑할까요? 우리는 자랑스러운 것을 내비치고 수치스러운 것은 애써 감추려고 합니다. 그런 가운데 진리이신 분을 정말 사랑할 수 있을까요?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감추어진 곳에서 더 빛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들은 허영심이 없기 때문에 잘한 것을 굳이 자랑할 필요가 없는 이들입니다. 오히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수많은 것을 숨겨 두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보시는 하느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이들은 진리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사람들 앞에서 작은 선을 잔뜩 부풀려 자랑하고 정작 자신의 어두운 면모는 꽁꽁 숨기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선을 사랑할까요? 선함의 의미를 올바로 알 때에 우리는 선을 쉽게 사랑할 수 없습니다. 단적인 예로 예수님은 하느님의 선을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그분이 보여주시는 십자가의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선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세상은 저마다 나뉘어져서 자신이 선이라고 우겨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상대를 철저히 파괴하려고 드는 세상입니다. 그 자체가 악이라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참된 선은 하느님을 사랑하기에 그분이 우리에게 명하시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느님이 참된 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알까요? 서로가 서로에게 끌리는 것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랑의 정의를 이렇게 가르쳐 주십니다. 형제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서로들 사랑하는 시늉을 합니다. 그래서 이 사랑은 불완전하고 곧잘 서로를 불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서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명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2.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대로 내가 한다는 것

우리 주님은 당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십니다. 그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이 살아가야 할 바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저마다 지고 가야 하는 무게의 십자가를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사명을 받아들여 지고 가는 사람입니다. 사제는 사제의 십자가를, 여러분은 여러분 고유의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당장 던져버리고 싶겠지만 하느님의 거룩한 명령 안에서 지고가야 마땅한 십자가입니다. 세상은 이 두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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