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마태 16,27)
혹자는 구약의 하느님은 냉혹하고 무섭고 신약의 하느님은 부드럽고 좋다고 합니다. 마치 두 하느님이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선호하는 하느님을 선택할 수 있을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하느님은 단 한 번도 갈라진 적이 없습니다. 삼위일체도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일 뿐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서로 떨어진 존재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한 분 하느님을 모시고 있을 뿐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 보이는 것은 우리가 저마다 처한 현실에서 바라보는 하느님이 달라 보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대상을 두고 왼쪽에서 보는가 오른쪽에서 보는가에 따라서 이미지가 달라 보이는 것과 비슷한 것이지요. 하느님은 처음부터 사랑과 자비 가득하고 정의와 공정으로 계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럼 그분을 우리는 어떻게 보고 있는 것일까요? 이 물음은 과연 우리가 어떤 모습에 처해 있는가 하는 것과 같은 물음입니다. 그럼 질문을 바꿔서, 우리는 과연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일까요?
아이들은 하느님을 ‘아빠’, 혹은 ‘친구’로 봅니다. 아이들은 맑은 마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는 하느님에 대한 논리적 증명이나 호교론 따위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는 그저 엄마가 ‘저 높은 곳에 하느님이 계신단다’라고 하면 그대로 믿고 받아들일 뿐입니다.
무언가 잘못한 이에게 하느님은 ‘심판자’로 다가옵니다. 언젠가는 우리에게 벌을 내리실 무서운 분으로 보이지요. 그리고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정의를 반드시 실행하실 것이기 때문이고 그 사실을 누차 말씀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다른 한 편, 무언가 잘못하였다가 되돌아온 이에게 하느님은 ‘용서하는 분’, ‘자비로운 분’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죄악이 아무리 드높아도 하느님은 그것을 기꺼이 용서하고 다시 당신의 집으로 받아들이시는 분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당신 집의 좋은 것을 누리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약속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하느님은 ‘진실하신 분’이기도 합니다. 단 한 번도 거짓을 말한 적이 없으시고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진실하신 분이시지요. 그분은 당신이 우리에게 약속한 것을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모두 이루실 것입니다.
이 밖에도 저마다의 처지에 따라서 다양한 하느님의 모습을 해석해 냅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하느님의 모습은 모두 일리가 있는 것이지만 그 어느 것도 온전한 하느님의 모습을 담아내지는 못합니다. 하느님은 오직 하느님이시기 때문이지요.
혹자는 구약의 하느님은 냉혹하고 무섭고 신약의 하느님은 부드럽고 좋다고 합니다. 마치 두 하느님이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선호하는 하느님을 선택할 수 있을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하느님은 단 한 번도 갈라진 적이 없습니다. 삼위일체도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일 뿐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서로 떨어진 존재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한 분 하느님을 모시고 있을 뿐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 보이는 것은 우리가 저마다 처한 현실에서 바라보는 하느님이 달라 보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대상을 두고 왼쪽에서 보는가 오른쪽에서 보는가에 따라서 이미지가 달라 보이는 것과 비슷한 것이지요. 하느님은 처음부터 사랑과 자비 가득하고 정의와 공정으로 계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럼 그분을 우리는 어떻게 보고 있는 것일까요? 이 물음은 과연 우리가 어떤 모습에 처해 있는가 하는 것과 같은 물음입니다. 그럼 질문을 바꿔서, 우리는 과연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일까요?
아이들은 하느님을 ‘아빠’, 혹은 ‘친구’로 봅니다. 아이들은 맑은 마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는 하느님에 대한 논리적 증명이나 호교론 따위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는 그저 엄마가 ‘저 높은 곳에 하느님이 계신단다’라고 하면 그대로 믿고 받아들일 뿐입니다.
무언가 잘못한 이에게 하느님은 ‘심판자’로 다가옵니다. 언젠가는 우리에게 벌을 내리실 무서운 분으로 보이지요. 그리고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정의를 반드시 실행하실 것이기 때문이고 그 사실을 누차 말씀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다른 한 편, 무언가 잘못하였다가 되돌아온 이에게 하느님은 ‘용서하는 분’, ‘자비로운 분’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죄악이 아무리 드높아도 하느님은 그것을 기꺼이 용서하고 다시 당신의 집으로 받아들이시는 분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당신 집의 좋은 것을 누리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약속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하느님은 ‘진실하신 분’이기도 합니다. 단 한 번도 거짓을 말한 적이 없으시고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진실하신 분이시지요. 그분은 당신이 우리에게 약속한 것을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모두 이루실 것입니다.
이 밖에도 저마다의 처지에 따라서 다양한 하느님의 모습을 해석해 냅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하느님의 모습은 모두 일리가 있는 것이지만 그 어느 것도 온전한 하느님의 모습을 담아내지는 못합니다. 하느님은 오직 하느님이시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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