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대부분의 신앙 간증은 ‘위기’에서 벗어난 삶을 진술합니다. 즉 위기의 상황에서 이런 저런 곳에 기대다가 결국 하느님 앞에 돌아왔을 때에 응답을 받고 신앙을 얻게 되는 경우를 말하지요. 신앙과 삶의 위기는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오해를 사기도 합니다. 신앙이라는 것이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마약처럼 작용한다는 것이 대표적인 오해이지요. 신을 믿지 않는 이들, 유물론자들이 종교를 바라보면서 하는 손쉬운 생각입니다.
그들의 생각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가장 타당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영원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지금 자신 앞에 주어진 삶이 전부일 뿐이고 영원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러니 신앙이라는 것은 지금 주어진 삶에서 고통이 극에 달한 사람들에게 잠시 마취 효과를 주는 것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줄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신앙은 그 누구에게도 ‘강요’할 수 없습니다. 강요하는 순간 그것은 신앙이 아니게 됩니다. 신앙은 다만 선택지를 내어줄 뿐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전부로 받아들이고 살 것인가, 아니면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인정할 것인가 하는 선택지를 내어주는 것이지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을 선택하고 받아들일 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관장하시는 분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 인간에게는 멋진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그 모든 것이 ‘광적인 행동’으로 비춰질 뿐입니다.
참된 신앙인들에게 세상 사람들의 삶은 위태한 것일 뿐입니다. 그들은 위기가 닥치고 겨우 살아난 뒤에도 그것을 ‘우연의 일치’로 바라볼 뿐이지요. 재수가 좋았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거룩하신 분의 손길을 상상하려고도 하지 않지요. 그러다가 다시 새로운 위기가 닥치는 날, 또는 자신들의 마지막 순간이 닥치는 날 그들은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할 것이고 신앙인들의 눈에 그들은 더욱 안타까운 존재가 될 것입니다.
또 신앙인들이 세상적으로 험한 일을 당하고 죽어가는 모습 앞에서 비신앙인들은 비웃을 뿐입니다. 그러나 신앙인들이 영원 안에서 받게 될 것을 전혀 상상도 못하지요. 그러나 신앙인들은 오히려 그런 시련과 위기 속에서 희망에 부풀어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간절히 고대하던 것을 받게 될 것입니다.
신앙은 절대로 아편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 앞에 닥치는 고통 앞에서 가장 진지할 것을 명령합니다. 참된 신앙인만큼 자신의 삶에 충실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들은 비겁하지 않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일상의 무게를 견디어내며 심지어는 자신의 몫이 아닌 짐마저도 지고 걸어갑니다.
비신앙인들은 이를 보고 비웃겠지요. 신경쓰지 마십시오. 그들이 자신들이 하고 싶은 생각을 하고 자신들이 하고 싶은 행동을 하게 내버려 두십시오. 다만 우리가 비출 수 있는 빛을 비추고 세상 안에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래서 때로는 오해를 사기도 합니다. 신앙이라는 것이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마약처럼 작용한다는 것이 대표적인 오해이지요. 신을 믿지 않는 이들, 유물론자들이 종교를 바라보면서 하는 손쉬운 생각입니다.
그들의 생각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가장 타당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영원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지금 자신 앞에 주어진 삶이 전부일 뿐이고 영원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러니 신앙이라는 것은 지금 주어진 삶에서 고통이 극에 달한 사람들에게 잠시 마취 효과를 주는 것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줄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신앙은 그 누구에게도 ‘강요’할 수 없습니다. 강요하는 순간 그것은 신앙이 아니게 됩니다. 신앙은 다만 선택지를 내어줄 뿐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전부로 받아들이고 살 것인가, 아니면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인정할 것인가 하는 선택지를 내어주는 것이지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을 선택하고 받아들일 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관장하시는 분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 인간에게는 멋진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그 모든 것이 ‘광적인 행동’으로 비춰질 뿐입니다.
참된 신앙인들에게 세상 사람들의 삶은 위태한 것일 뿐입니다. 그들은 위기가 닥치고 겨우 살아난 뒤에도 그것을 ‘우연의 일치’로 바라볼 뿐이지요. 재수가 좋았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거룩하신 분의 손길을 상상하려고도 하지 않지요. 그러다가 다시 새로운 위기가 닥치는 날, 또는 자신들의 마지막 순간이 닥치는 날 그들은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할 것이고 신앙인들의 눈에 그들은 더욱 안타까운 존재가 될 것입니다.
또 신앙인들이 세상적으로 험한 일을 당하고 죽어가는 모습 앞에서 비신앙인들은 비웃을 뿐입니다. 그러나 신앙인들이 영원 안에서 받게 될 것을 전혀 상상도 못하지요. 그러나 신앙인들은 오히려 그런 시련과 위기 속에서 희망에 부풀어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간절히 고대하던 것을 받게 될 것입니다.
신앙은 절대로 아편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 앞에 닥치는 고통 앞에서 가장 진지할 것을 명령합니다. 참된 신앙인만큼 자신의 삶에 충실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들은 비겁하지 않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일상의 무게를 견디어내며 심지어는 자신의 몫이 아닌 짐마저도 지고 걸어갑니다.
비신앙인들은 이를 보고 비웃겠지요. 신경쓰지 마십시오. 그들이 자신들이 하고 싶은 생각을 하고 자신들이 하고 싶은 행동을 하게 내버려 두십시오. 다만 우리가 비출 수 있는 빛을 비추고 세상 안에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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